한국어

마르지 않는 샘

소풍 이야기
pic_green.jpg

http://news.joins.com/article/19566014


지난 1월 5일 아침, ‘엄지발가락의 기적’이란 제목의 칼럼을 읽었다.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이 쓴 박운서라는 사람, 김영삼 정부 때 통상산업부 차관을 역임했으며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사장, 데이콤 회장을 지냈다. 정년 퇴임 후, 10년간 필리핀의 오지 민도로 섬에서 15ha의 땅에 벼농사를 짓고, 그 쌀로 망얀족 아이들 밥을 먹이고, 교회 14곳을 세우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 그런 그가 지난해 4월 19일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인 채로 서울로 후송됐다. 의식을 찾았을 때 양쪽 무릎과 정강이에 철심이 박히고, 요도엔 평생 달고 살아야 할 도뇨관이 있었다. 오른 발은 엄지 발가락뿐이었다. 그는 하나 남은 엄지 발가락이 다행이라고 했다. 그마저 없었다면 목발을 짚고 서기도 어려웠을 것이기에... 그런 그가 민도로 섬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고 있다고 했다. 권석천위원은 ‘단순히 발가락 하나가 온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다시 일어서서 봉사와 선교의 땅에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기적’이라고 칼럼에서 밝혔다.

칼럼을 읽고 아침 내내 그의 이야기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래전 필리핀 오지로 봉사활동을 하러 떠난다는 사람을 인터뷰한 적 있었는데 혹시 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하자마자 회사의 사진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했다. 아침에 읽은 칼럼의 주인공과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사진의 주인공은 같은 사람이었다. 당시 그는 화려한 공직생활과 최고경영자의 이력을 뒤로한 채 남은 인생을 필리핀 원주민에게 바치겠다고 했다. 땅을 구입하여 두레마을처럼 공동농장 운영하고, 학교와 예배당도 지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그렇게 한다는 게 아니고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였기에 믿거나 말거나 일수도 있었다. 인터뷰 내내 이야기한 요지는 ‘이제까지는 나를 위해 살았지만 남은 인생은 남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딱 십 년이었다. 10년 계획으로 떠난 그가 의식불명인 채로 한국에 돌아온 게…. 그리고 칼럼으로 판단컨대 그는 10년 전의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며칠을 망설이다가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틀 후 연락이 왔다. 병원으로 와도 좋다는 답이었다. 조명 장비와 카메라를 챙겨 병원을 찾았다. 인사를 드렸지만 나를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프린트해서 들고 간 사진을 보여주며 10년 전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진과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를 기억해냈다.

10년 간의 봉사활동 이야기와 사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가 가진 재주가 사진 찍는 재주뿐이니 사진 한 장 찍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사실 병원으로 찾아 온 이유였다. “영정사진하면 되겠네.” “그런데 제가 영정사진이라고 찍으면 잘 안 돌아 가시더라구요.” “그러면 더 좋지”하며 시원스레 웃었다. 그가 보던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나는 매일 죽는다』세 번이나 쓰러지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면서까지 충성스럽게 사역한 이중표 목사의 고백록이었다. 무슨 책이냐고 물어봤다. 믿음에 관한 책이라고 했다. 사실 나는 그의 믿음을 잘 모른다. 나 같았으면 지금의 처지를 원망했을 터이다. 그런데 그는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와서도 믿음을 이야기했다. 더구나 운신도 힘든 몸으로 다시 돌아갈 날을 손꼽았다. “당장 급한 게 합동결혼식이야. 부모들 혼인신고가 돼야 아이들 출생신고를 할 수 있고, 그래야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이건 10년 전에 그가 그랬듯, 스스로를 코 꿰는 자신과의 약속이라 여겨졌다.

사진을 찍으려면 내복 위에 셔츠를 걸쳐 입어야 했다. 간병하는 막내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얼굴 사진을 찍은 후, 발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여줬다. 왼 발보다 유독 가느다란 오른 발, 여기저기 수술 자국. 그리고 그곳엔 엄지 발가락 하나가 달랑 남아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다시 설 수 있다고 했다. 다시 설 수 있으니 다시 가야 한다고 했다. 남을 위해 살겠다던 10년 전 그의 약속, 나는 반신반의했었다. 다시 가겠다는 지금 그의 약속, 그러나 지금 나는 온전히 믿는다.htm_2016021415374924532_99_20160216210005.jpg

교회: 661 Agnes St. Victoria, BC V8Z 2E7
연락처: 250-891-2260, http://www.victoriachurch.org
담임교역자: 신 현 철 목사(Rev. Hyunchoul 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