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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공과13(150405)

2015.04.02 09:41

서승철 조회 수:95

살아나신 그리스도

성서본문요한복음 20:1-29, 고린도전서 15:3-8

공과주제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 <안내>: 원래대로 하자면이번 공과는 4: “너무 아파요입니다하지만 공과 내용이 너무나 터무니 없어서 아예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죄가 질병의 원인이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면 기독교 신앙이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자칫 진리의 말씀을 정죄의 수단으로 사용할 위험도 있습니다예를 들어심한 병에 걸린 사람에게 찾아가서 위로는 커녕 다짜고짜 회개해!”라고 말하는 경우입니다죄에 대해서도 그리고 질병에 대해서도그것은 잘못된 접근입니다하여, 4 5일 공과는 절기에 따라 부활과 관련된 내용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이 내용은 고등부 교재 <6살아나신 그리스도>에 있습니다그리고 본 공과에 대한 내용은 부활에 관련된 바울의 기록을 바탕으로 질문과 응답 형식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1.     부활의 역사성

Q. 고린도전서 15:3-8에 나타난 부활의 증인은 누구누구 인가요?

 ·       게바(베드로) – 12제자 – 오백여 명의 형제들(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 – 야고보(예수님의 동생) – 바울(다메섹으로 가던 중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음)

 

Q. 6절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 중 대다수가 당시에 어떻다고 말하였습니까?

·       어떤 사람들은 죽었지만당시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살아 있었습니다그 말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다는 것입니다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지만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사실을 경험하고 말하는 것이기에 훨씬 정직한 것입니다.

 

Q. 바울이 부활의 증인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예수님의 부활은 거짓이나 꾸며낸 말이 아니라역사적으로 일어난 실재의 사실입니다!

 

(** 보충설명) 복음서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최초의 사람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제자 중 베드로와 요한은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 들었고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였습니다그 후, 12제자들이 집에 모여 있었는데예수님이 부활하신 몸으로 그들을 찾아갔습니다그러데요한복음을 보면그 때 그 자리이에 도마는 없었다고 합니다도마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고 자신들을 찾아오셨다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그는 자신의 눈과 손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얼마 후도마도 함께 제자들과 있었는데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셨습니다그리고 도마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주면서 직접 만지게 하셨습니다도마는 비로소 예수님의 부활을 온전히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약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머무셨습니다그 시간 동안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아마도 그 시간 동안 12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에 관한 이야기는 복음서들과 사도행전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그래서 우리가 부활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성경을 살펴봐야 합니다그런데 부활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복음서나 사도행전이 아닙니다성경편집순서에 따르면 복음서와 사도행전 다음에 위치하지만기록된 시기에 따르자면바울의 서신서가 가장 먼저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특히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관하여 자세하게 말했습니다왜냐하면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이 없는 틈을 타서 유대로부터 거짓 사도들이 몰래 들어와서 활동하고 있었는데,그들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5:12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린도 교회의 이런 상황 속에서 바울은 강력하게 말합니다복음과 믿음과 구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으므로 만일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복음도 믿음도 그리고 구원도 헛것이 된다고 말입니다또한 우리의 죄도 사해진 것이 아니게 됩니다. 15:14-15, 17이 이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며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그러나 바울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진짜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도 거짓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바울은 그 사실을 보여줄 많은 증인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12제자들과 수많은 무리들이 있습니다바울은 그 무리가 오백 여명이나 된다고 말했습니다.그들 중 일부는 죽었지만 대다수는 살아 있다고 말했습니다법정적 효력을 위해서는 증인이 한 명만 있어도 됩니다그런데 바울은 지금 그런 증인이 오백 명 넘게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게다가 바울은 자기 자신이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라고 내세우고 있습니다한 때는 교회를 핍박하던 그가 후에는 복음을 열렬히 전파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180도 바뀔 수 있습니까온전한 정신으로는 불가능 합니다만일 바울이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오직 부활의 경험만이 그러한 변화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2. 부활의 의미

Q. 로마서 1:3-4을 보면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까?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1:3-4) 

·       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는 그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완전한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 되심의 선포다!”라고 말했습니다.

 

Q.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고린전서 15:20-22)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0-22)

·       예수님이 인간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우리의 죄를 위한 죽음을 당하심이라면그가 다시 죽은 몸으로 살아나신 것은 또한 우리의 생명을 위한 것입니다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죄의 용서와 죄의 권세에서의 해방 곧 사망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복음은 이것입니다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믿는 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3. 부활에 대한 오해

부활은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왜냐하면 부활이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생명의 방식을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우리가 경험하는 이 땅의 생명은 모두 죽음을 향해 나아갑니다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은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기는 하나 아주 이질적인 또는 역설적인우리의 이해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모순적인 것입니다그러니 당연히 부활에 관한 오해도 많이 생기게 됩니다다음은 부활에 관한 사람들의 가장 일반적인 두 가지 오해입니다.

·       1) 부활은 우리의 육체가 있는 그대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       2) 부활은 육체는 폐기되고 영혼만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한쪽으로 치우친 잘못된 생각입니다먼저 1)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만일 부활이 우리의 육체적인 몸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라면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하나는 시기에 관한 문제입니다사람은 아기로 태어나서 보통 노인으로 죽습니다그렇다면 부활은 그 중에서 어느 때의 모습으로 나타날까요모호합니다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최고의 모습일 것이라고 말하지만그 역시 애매한 말입니다다른 하나는 불완전성의 문제입니다만일 우리가 육체로 부활하게 된다면 우리는 영원히 불완전성 안에 갇히게 됩니다예를 들어키가 작은 사람은 영원히 키가 작고 얼굴이 큰 사람은 영원히 얼굴이 큽니다보다 심각한 것은 장애의 경우입니다다리가 절단 된 사람이 육체의 모습 그대로 부활한다면그 사람은 영원한 장애인이 될 것입니다이러한 부활은 희망이 아니라 고통입니다다음으로 2)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2)번의 생각이 기독교의 부활사상과 일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그러한 이해는 근본적으로 고대 헬라세계의 영-육 이원론적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는 사실 전혀 다른 것입니다한 때, 2-3C의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그러한 세계관적 바탕에서 복음을 왜곡시킨 영지주의 사상이 아주 크게 번성하기도 했었지만교회의 정죄를 받고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비슷한 생각들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고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자세한 설명을 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여기에서는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기억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만일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혼만을 다시 살리기 원하셨다면 그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려 죽을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       3) 기독교의 부활사상은 몸의 부활이다.

기독교의 부활사상은 3)번입니다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서 몸의 부활을 고백합니다물론여기에서 말하는 몸이란 육체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마찬가지로 영혼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닙니다본질적으로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 신앙은 육과 영의 이분법적 사상을 배격하고 육과 영의 통합체인 분리되지 않는 인격으로서의 하나의 몸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부활은 바로 그 하나의 몸에 대한 부활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우리가 지금 현재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그 몸의 유한성의 무한한 연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부활은 단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그런 단순한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심오한 영적 무게담을 함축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사건을 가리켜서 부활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를 뿐입니다그것이 부활이라고 해도 그것은 단지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부활일 뿐입니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건입니다나사로는 부활했어도 다시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유한성을 가지고 있었지만예수님은 죽음 자체를 깨뜨린 생명의 사건으로 일어나서 다시는 죽을 수 없는 생명의 완전성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부활은 몸의 연장 또는 반복이 아닙니다부활은 몸의 완성 곧 새로운 몸으로 변화됨입니다마치 씨앗이 자라나 나무가 되듯이 혹은 애벌래가 잠시 죽은 것 처럼 되었다가 나비로 완성되듯이 말입니다사도 바울은 이러한 부활의 변화에 관하여 고린도전서 15:51-54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이 썩을 것ㅇ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진실로 그렇습니다부활은 사망이 생명에게 삼켜지는 생명의 질적 차원의 완성입니다진실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그러한 부활 생명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진실로 우리도 그의 생명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4. 활의 교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저 과거에 일어난 놀라운 한 사건이 아닙니다부활의 메시지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때까지 영원히우리에게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그렇다면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오늘 우리들의 삶은 이전과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영원한 생명의 신비 곧 부활을 진정으로 믿는다면오늘 우리의 삶은 분명 변화될 것입니다마치 사도 바울처럼 말입니다우리는 두 가지 교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1)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라.( 1:21-22)

이러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서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 제자들이 처음으로 한 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사람을 뽑는 일이었습니다사도들은 복음을 전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증인의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그들은 심지어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협박과 박해를 받았을 때조차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그는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했습니다심지어 그가 죄인의 신분으로 총독으로부터 재판을 받았을 때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했습니다이처럼 부활을 믿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그것은 세상이 부활을 받아들이든 아니든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오직 증인은 자신이 보고 듣고 또 경험한 것을 거짓 없이 증언할 책임을 가질 뿐입니다.

2)     생명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라.(벧전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그의 많으신 궁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만일 우리에게 다시 살 생명의 소망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만일 오늘 살다가 내일 죽고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다면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마음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아무 것도 절제할 필요도 없고 원하는 만큼 즐기다가 죽으면 그만일 것입니다하지만 우리에게는 생명의 산 소망이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우리의 욕망을 절제하기도 하고 때로 고난이 찾아와도 그것을 피하지 않습니다.더 나은 삶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또한 자유할 수 있습니다참된 생명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헛된 것들에 집착하게 됩니다돈을 생명처럼 여기고 출세하는 것에 목숨을 걸고 세상에서 실패하거나 가난하게 되면 마치 생명을 잃은 것처럼 생각합니다그렇게 사람들은 참된 것이 아닌 것에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소비하며 살아갑니다그러나 진짜 생명을 아는 사람은 이미 생명 안에 거하고 있으므로 세상의 삶의 방식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남들보다 적게 가져도 그것에 감사할 수 있고 오히려 나눠줄 수 있습니다




제 3죄인의 친구

성서본문마가복음 1:14-20, 2:13-17

공과주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1.     예수님의 4제자들

Q. 예수님이 부르신 처음 4제자는 누구 누구였습니까그들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1:14-20)

·      * 이름안드레야고보요한

·      * 직업갈릴리 해변의 어부들

 

Q.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을 위해서 어부들을 제자도 부르셨습니다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      * 예수님은 사람의 신분이나 능력 혹은 그의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지 않으신다.

·      * 예수님은 가장 낮은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기를 기뻐하셨다.(“적은 무리여무서워 말라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12:32)

·      * 나와 같은 연약한 사람도 예수님께 붙들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다.

 

<** 보충해설>

예수님의 첫 4제자들이 모두 갈릴리 해변의 어부였습니다그들은 사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일에 전혀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그들은 고작 갈릴리 해변에서 물고기를 잡을 줄만 알았지 율법이나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그러한 일에 관한 전문가들은 따로 있었습니다서기관바리새인제사장서기관은 전문적으로 율법을 교육받은 선생들로서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지식보다는 율법의 실천에 관심이 많았던 자들로서그들은 온 몸을 받쳐 헌신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노력한 사람들이었습니다그리고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드려지는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들로써 사실상 유대교의 실질적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우리가 생각컨데만일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을 위해서 동역자가 필요하다면 좀 전문적인 지식이 있거나 실질적인 권세를 가진 이들이 적당할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부르심의 주권이 바로 예수님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의 부르심 앞에서 우리의 자질이나 능력은 아무런 (+)요인이 되지 않습니다아니엄밀히 말해서 그런 것들은 고려 대상도 되지 못합니다오직 능력은 주님께 있으며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부르심은 오직 은혜입니다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4:7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이는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는 다음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비록 제자들이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그리고 제사장에 비해서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만 한 가지만은 나은 점이 있습니다어부들에게는 자기 의가 없다는 것입니다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 의에 빠져 있었습니다.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지식을 가졌다는 ’, 다른 사람들은 흉내를 낼 수조차 없는 경건생활을 한다는 ’,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적인 종교적사회적정치적 신분의 위치에 있다는 ’ 말입니다이러한 자기 의는 일종의 교만입니다왜냐하면 자기 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만이 옳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방식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그것이 심지어 진리이고 구원이라고 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그러나 제자들은 무지하기 때문에가난하기 때문에천하기 때문에 내 세울만한 자기 의가 없습니다그래서 그들은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자기가 가진 것을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예수님이 갈릴리 어부들을 향해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을때그들은 그렇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내려 놓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태복음 8:34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 제자로 부르심을 받기에 합당할까요그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그는 많은 물질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그는 남들보다 지적으로 탁월한 사람도 아닙니다그는 오히려 겸손한 사람입니다자기를 자랑하지 않는 자입니다곧 하나님의 의 앞에서 자기 의를 포기하고 새로운 구원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2.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

Q. 마가복음 2:14에서 예수님이 다섯 번째로 부르신 제자 레위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      * 세리(Tax Collector)

 

Q. 마가복음 2:16을 보면사람들은 세리를 어떻게 불렀습니까사람들은 왜 세리를 그렇게 불렀을까요?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2:16)

·     *  사람들은 세리들을 가리켜서 죄인이라고 불렀습니다사람들이 세리를 죄인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첫 번째는 세리가 자기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과한 세금을 걷었기 때문입니다두 번째는 세리가 로마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많은 사람들이 나라 잃은 슬픔으로 고통을 당하고 또 어떤 이는 독립을 위해서 피를 흘리는데세리들은 오히려 자기 출세를 위해 나라를 파는람들이었습니다세 번째는 두 번째와도 관련이 있는데사람들은특히 바리새인들은 세리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지연시키거나 막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이스라엘이 다윗 시대와 같은 옛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때문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는 일차적으로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 지킬수록 그러한 일이 빨리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께 율법의 제물로 받치기로 결단한 자들이었습니다그런데 세리들은 오히려 로마를 위해서 일했으니바리새인들이 보기에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을 막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Q. 마가복음 2:17을 보면예수님이 죄인을 제자로 부르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2:17)

·     *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의인을 부르러 올 줄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죄인들을 부르기 위해 오셨습니다왜냐하면 스스로 자기를 죄인이라고 여기는 자만이 진리와 구원을 향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자기를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사람들은 오히려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3.     공과의 교훈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이 부르신 처음 다섯 제자들 4명의 어부와 1명의 죄인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물론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곧 자기를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아니그들은 오히려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그들에게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것들이었습니다.가난무식하지만 이처럼 그들에게 자기 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라고 부르셨을 때곧 자기의 삶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볼 차례입니다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그러나 만일 우리가 자기를 내세운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의 부르심을 듣지도 그것에 응답하지도 못합니다나의 능력경험지식그런 자기 의는 오히려 방해가 될 뿐입니다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향한 온전한 의가 되십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자랑하는 자기의 의들을 내려놓아야 하겠습니다오직 겸손과 회개와 순종으로만 주님을 따를 수가 있습니다.

앞의 보충설명에서는 마 8:34의 말씀을 인용하였는데여기 결론에서는 누가복음 9:23의 말씀을 인용하겠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기에 날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한 번뿐만이 아니라 날마다 입니다그렇게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어가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