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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공과18(150524)

2015.05.20 07:48

서승철 조회 수:83

새싹공과 18: 가장 귀한 선물

 

v  공과본문: 사도행전 3:1-26

v  공과주제: 우리의 가장 귀한 선물이신 예수님

 

1. 나면서 못 걷게 된 이

본문의 이야기에 나오는 성전 미문에 앉은 사람은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걸어본 경험도 그리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 사람은 걷는다는 것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는 절대적인 절망의 상태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자신이 가진 본질적인 절망에 대해서는 깊게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언가에 대한 인식을 위해서는 인식의 주체와 인식의 객체 사이에 어느 정도의 분리 또는 거리가 필요한데, 이 사람의 경우에는 그렇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걸을 수 있거나 혹은 걸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는 못 걷는다는 사실이 절대적인 절망으로 다가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애초부터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 사실은 그저 자기의 일부일 뿐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다른 절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존재의 절망이 아니라 날마다 성전 미문에 앉아서 사람들에게 구걸을 해야 하는 삶의 절망입니다. 참으로 절망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절망하지 못하고 상대적인 결핍에 대해서는 철저히 절망하는 이러한 상태야 말로, 이 사람의 진짜 절망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비단 그의 것만이 아닙니다. 본문의 주제를 인간의 죄의 실존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새롭게 됨이라고 볼 때, 이 이야기는 또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두 가지 종류의 절망이 있습니다. 하나는 존재의 절망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절망입니다. 이 중에 우리가 참으로 절망해야 하는 것은 존재의 절망입니다. 존재, 의미, 가치, 정신의 상실이야말로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철저하게 절망해야 할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님을 떠나 죄와 사망에 상태에 놓여 있는 우리의 영적인 실존이야말로 우리의 본질적 절망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종류의 절망에 대하여 절망하기를 포기하고 살아갑니다. 그 대신에 사람들은 상대적 결핍에 절망합니다. 성전 미문에 앉은 자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을까 오직 그 한가지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들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소유할 수 있을까 오직 그 한 가지에 메달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이것입니다. 존재의 절망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삶의 결핍만을 채우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절망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 존재에 대한 것이며 구원은 삶보다 먼저 존재를 향해 주어져야 합니다

 

 

2.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베드로와 요한은 아주 분명하게 이 사실들을 인식하였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이 말은 물론 실제로 베드로와 요한에게 물질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이 말은 설령 베드로와 요한에게 물질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물질은 그의 삶은 진정으로 해방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질은 그 앉은 사람에게 단지 하루의 삶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그는 또 다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을 해야 하는 운명을 반복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앉은 그를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질이 아닌 더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또한 그 이름으로 말미암은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 믿음이 그를 일으켰습니다. 누가는 이 장면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였는데, 곧 그는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단순하게만 보자면 이 일은 그저 하나의 놀라운 기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자세히 본다는 의미는 이 사건 이후에 나타나는 베드로의 해석, 특히 19절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의 의미이고 메시지입니다. 어떤 의미? 어떤 메시지 일까요새로운 존재로의 변화의 의미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이 우리 존재를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메시지입니다.

 

 

3. 새롭게 되는 날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성경은 우리에게 물질의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진정한 구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반복되는 삶 속에서 우리는 늘 물질의 결핍때문에 절망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자체가 새로워지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진정한 구원이자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러한 변화가 가능할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이름으로 말미암은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죄에서 의로 그리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변화되셨습니다. 곧 예수님 자체가 바로 새 존재이십니다. 믿음은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나타난 그 새존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17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무엇이 새로워졌을까요? 우리의 외모? 지식? 물질? 아닙니다. 진정으로 새로워진 것은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의 죄된 실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다시 연합한 우리의 새 존재는 하나님의 의를 덧입고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