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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공과18(150524)

2015.05.20 19:59

서승철 조회 수:83

8과 주의 전신갑주를 입고

 

v  공과본문: 에베소서 6:10-20

v  공과주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0  1.  영적 전투

성경에는 신앙생활을 묘사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약의 광야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신약의 영적 전투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두 가지 비유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광야’, ‘전투’! 어떤 이미지입니까? 거칠고 힘들고 치열한 느낌이 듭니다.

신앙생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쁨과 평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누립니다. 마치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간 베드로가 이곳이 좋사오니…” 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다시 세상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산 위 와는 전혀 다른 현실이 펼쳐져 있습니다. 고난과 핍박 그리고 유혹이 있습니다. 우리 대적 마귀가 마치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고 있습니다(벧전 5:8).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신앙생활의 두 번째 차원인 광야생활과 영적 전투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광야생활과 영적전투는 어떻게 다를까요? 광야생활은 그리스도인의 실제 신앙생활이 펼쳐지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반면, 영적전투는 그 속에서의 우리의 신앙자세가 어떻해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2.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필요한 까닭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0-13절까지의 말씀은 우리에게 왜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필요한지의 이유와 그것이 무엇을 위함인지 그 목적에 관한 내용입니다. 먼저 12,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대하는 어둠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 세력들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처럼 눈에 보이기도 하고 혹은 어둠 세상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처럼 눈에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이 세력들이 눈에 보이든 눈에 보이지 않든,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을 반대하는 편에서 움직입니다. 때로는 간접적이고 소극적인 방식으로 성경적 가치관들을 몰래 세상적 가치관들로 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집적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박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전투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도인들이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현실입니다.

만일 전투를 피할 수 없다면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효율적으로 적의 공격을 방어할 뿐만 아니라 적시에 공격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가지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주 안에서서 강하게 되고 악한 날에 대적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능히 승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전신갑주

바울이 에베소서 6장에서 말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어떻게 보면 단순한 비유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믿음의 방패가 있고 구원의 투구가 있고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는 말은 영적으로 균형 있는 상태 혹은 깨어있는 상태를 일컫는 은유적 표현이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 진리, , 평화, 구원, 말씀, 이러한 기독교 영성의 구성요소들을 각각 방패, , 흉갑, 신발, 투구, 검에 비유할 때에는 나름의 개연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우리들은 여기에서 바로 그 의미의 연관성을 좀 더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믿음의 방패입니다. 방패 외에도 보호장비는 많이 있습니다. 흉갑이라든지 투구라든지 혹은 신발도 때에 따라서는 보호구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 전체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어수단은 역시 방패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믿음을 가장 앞에 세워 놓아야 합니다. 만일 믿음이 흔들리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흔들리고 무너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나 만일 믿음이 견고하면, 우리는 적어도 기둥이나 기초가 흔들리는 위기로부터는 안전할 수 있습니다. 방패 밖으로 들어오는 세부적이고 작은 문제들을 처리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몸통과 허리는 각각 의와 진리로 둘러 쌓여 있어야 합니다. 허리는 우리 몸의 중심 곧 기준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기준일까요? 진리입니다. 세상은 점점 어른이 되어갑니다. 세상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말의 의미는 세상이 이전까지 절대적이라고 여겨왔던 지식이나 가치들이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믿고 살아갑니다. 곧 우리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절대로 믿습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이처럼 진실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이 또한 분명해집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진다고 해도 그리스도인들은 그 중심에 진리의 띠를 띠고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단지 진리를 머리로만 혹은 가슴으로만 이해하거나 느끼는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진리를 삶 속에서 실천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의의 흉배입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진리의 기준이 바로 세워지면 그 다음에는 옳은 것을 지향하는 삶 곧 의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발은 평화입니다. 이것은 조금 역설적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딛고 서 있는 현실의 세계는 광야와 같고 또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두려움 허무와 소외의 신발을 신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평화를 잃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음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알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사랑에 대한 확신 때문에 우리는 평화의 신을 신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철저하게 보호해야 하는 것은 머리입니다. 그래서 투구는 가장 강력한 재질로 튼튼하게 재작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투구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요? 구원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 없는 사랑 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은 그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강철과도 같습니다. 심지어는 죽음마저도 그것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가끔 세상에서 실패하기도 하고 초라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구원의 투구는 여전히 찬란한 빛을 뿜으며 우리의 머리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방패, 흉갑, , 신발, 투구만으로는 전투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방어는 특별히 다수와의 전투에 있어서 아주 효율적인 전략일 수는 있지만 결정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중요한 타이밍에 공격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좋은 무기는 강력하고 예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그러한 무기가 될 만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4 12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해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또 시편 119 9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세상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말씀의 검을 예리하게 갈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검은 또한 성령의 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할진데 누가 하나님의 성령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