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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공과22(150621)

2015.06.19 12:33

서승철 조회 수:96

푸른공과22: 하나님의 무한 사랑


v 공과본문: 호세야 1:1-10, 2:19-23

v 공과주제: 우리를 끝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 

 

북이스라엘의 선지가로 부르심을 받았던 호세아가 살던 시대는 겉으로는 아주 화려했습니다. 여로보암 2세가 왕으로 있던 이 때는 수도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그야말로 북이스라엘 최고의 전성기였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장 잘 나가던 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북이스라엘은 철저히 타락하고 부패한 모습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저버린지 오래 되었고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 등 이방의 신들에 대한 제사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도 제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비단 종교만 문제가 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북이스라엘은 정의나 사랑이나 자비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이나 연약한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거나 못살게 굴었습니다. 힘이 있으면 그래도 되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믿음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타락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으로도 부패한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선지자로 부름 받은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멜이라는 여자는 음란한 여자입니다. 고멜은 한 남자, 곧 자기 남편에게 신실하지 못한 여자 였습니다. 고멜은 자기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밖으로 나가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사랑을 했습니다. 심지어 고멜은 자녀를 낳은 후에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첫째 아들 이스르엘(대규모 학살의 장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시겠다는 의미), 둘째 딸 로루하마(사랑 받지 못함이라는 의미, 히브리어 not의 의미를 가짐), 셋째 아들 로암미(내 백성이 아님이라는 의미)를 낳을 때까지 고멜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결혼을 했는데 나의 배우자가 이런 일을 행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만일 율법을 따르자면 이런 여자는 간음 죄에 해당하여 돌에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마땅하고 정당한 행위였습니다. 신뢰가 깨어진 부부는 더이상 부부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호세아는 아무런 대가 없이 고멜을 다시 자기의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아니, 단지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고멜을 아내로 받아준 정도가 아니라 호세아가 직접 아내를 찾아가서 다른 남자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찾아온 것입니다. 호세아는 아마 고멜의 남자들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 여자는 원래 나의 아내입니다. 그러니 내가 당신에게 이 돈을 지불하고 대신 찾아가겠습니다.” 분명 신뢰를 깨뜨린 쪽은 호세아가 아니라 고멜입니다. 그러니 죄를 지은 것도 고멜입니다. 그러면 고멜이 호세아를 찾아와서 빌어야 합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고멜이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가 되었습니다. 고멜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용서를 받고도 다시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호세아는 고멜을 계속해서 용서합니다. 그녀를 다시 아내로 맞아줍니다. 자신이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그렇게 합니다. 왜냐하면 호세아가 고멜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호세아의 이야기는 단지 호세아와 고멜 사이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호세아처럼 음란한 여자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을 아내로 삼으신 신랑입니다. 부부가 된 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대하여 어떤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깨뜨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고멜처럼 이 관계를 깨뜨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이방의 신들에게로 마음이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과 정의의 질서를 버리고 힘을 가진 자들이 온갖 불의를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신뢰를 깨뜨리고 사랑을 잃어버린 아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법대로라면 이스라엘에게 남은 것은 심판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호세아처럼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용서하십니다. 그릇된 길을 버리고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길 기다립니다. 그냥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십니다. 스스로 죄인이 되신 것처럼 이스라엘의 허물의 대가를 치르시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남편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때문입니다.

 

 

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3:16)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치 호세아와 같습니다. 죄가 없음에도 아내를 다시 찾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는 호세아의 모습 처럼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5:8)

 

또 우리는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때로는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때로는 고기가 없다고 원망합니다. 때로는 적군이 너무 강하다고 원망하고 때로는 가나안 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원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에 그들을 통해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고 그 곳에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이 부부의 관계와 같다는 비유는 참으로 적절합니다. 간혹 우리는 신앙생활을 교회와 기도나 말씀 묵상과 같은 몇몇 종교적 행위로만 제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생활입니다. 진짜 신앙생활은 부부의 관계처럼 모든 삶 속에서 서로에게 사랑과 신뢰를 주는 것입니다. 교회 밖에 있어도 혹은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거나 말씀을 묵상 하지 않을 때조차도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야합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게 진짜 신앙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