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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공과06(150208)

2015.01.29 23:59

서승철 조회 수:269

** 안내: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서 수리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첨부파일 없이 공과안내를 올려야 할 듯 하네요



06과 용서할래요

** 본문: 누가복음 15:11-32

** 주제: 회개와 용서


1. 교사를 위한 본문 안내

** 회개 모티프: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여러 신학적 모티프 중에 중요한 하나는 '회개'입니다.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회개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본문으로는 누가복음 10:13-15과 13:1-5의 말씀입니다. 먼저 10장은 회개하지 않는 갈릴리의 세 도시,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에 대한 예수님의 화선포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가장 많이 경험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도시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13장은 회개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입니다. 예수님은 3절과 5절에서 각 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그런데 누가복음은 왜 이렇게 회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이전까지의 삶의 방식들과는 전혀 다른 구원의 현실성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붙들고 있던 구원의 중심들을 모두 내려 놓아야 합니다. 따라서 죄의 길을 가던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는 종교가 정한 의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현실 앞에서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실제로 이렇게 회개하였을까요? 누가복음에는  3명의 대표적인 사례들이 있습니다. 먼저 베드로의 회개(5:1-11)입니다.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왠일인지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아침이 되어 그물을 씻고 들어가려던 참에 예수님이 자신의 배에 올라타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말씀을 마치자 예수님은 이번에는 베드로를 향해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명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탐탁치 않았지만 예수님이 지시하신 대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찢어진 것은 그물이 아니라 베드로 자신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5:8)."

두 번째는 어느 죄 많은 여인의 회개(7:36-50)입니다. 예수님은 한 바리새인의 초대를 받고 식사자리에 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같은 동내의 어느 죄 많은 여인은 향유를 가득 담은 옥합을 들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이 예수님의 발을 적시자 그 여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그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옥합을 열어 자신이 가져온 귀한 향유를 그 위에 부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이 여인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행동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니 불쾌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죄인으로 소문난 여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자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7:48)."

세 번째는 삭개오의 회개(19:1-10)입니다. 여리고의 세리중의 세리, 삭개오는 어느날 예수님이 자신의 동내에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처지라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삭개오는 나가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키가 작은 그는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 한 번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앞을 지나가던 예수님은 멈춰서서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집에서 하루를 머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으나 이제는 예수님을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19:7)"고 말입니다. 그날 삭개오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미움을 받던 그는 마침내 진실한 환대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삭개오는 중요한 결심을 하고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소유의 절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내가 누구의 것이든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4배로 갚겠습니다(19:8)."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누가복음 15장: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이와 같은 회개의 모티프(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잃어버린 자를 찾는 그리스도)가 가장 드라마틱하게 묘사된 곳은 아무래도 15장일 것입니다. 먼저 15장의 구조를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1) 배경: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시기(1-2)>

  •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2) 잃은 양 비유(3-7)>

  •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3) 잃은 드라크마 비유(8-10)>


  •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4) 잃은 아들 비유(11-32)>

  •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이상의 구조를 통해서도 알수 있듯이 누가복음 15장의 세 가지 비유의 말씀은 모두 무언가를 잃었다가 다시 찾았을 때의 기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에서는 앞의 두 이야기와는 다른 점이 하나 추가되어 있습니다. 바로 맏아들의 존재, 즉 잃은 자를 다시 찾은 것을 전혀 기뻐하지 않는 사람의 등장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맏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창녀들과 함께 삼키고 돌아온 둘째를 위해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를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것은 1-2절에 나타난 이야기의 배경설명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맏아들은 이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한다는 이스라엘의 선생된 자가 어찌 그런 못된 자들과 함께 어울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세리와 죄인들은 그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는 달랐습니다. 세리와 그의 친구들은 '죄인'이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서 다시 길을 찾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회개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에 참여한 자녀가 되었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만일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맏아들이라면 이렇게 아버지의 마음을 오해하고 시기와 분통을 터뜨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기쁨에 함께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2) 교사를 위한 공과안내

**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잉 누가복음의 전체 맥락에서 본문의 말씀을 이해한다면, 이 이야기의 주제는 역시 용서라기보다는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누가복음 15장에서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만을 따로 떼어서 생각해본다면, 등장인물 중 누구를 중심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주제는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먼저 둘째 아들의 행동을 중심으로 생각해본다면, 본문의 주제는 '회개'로 잡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런데 만일 첫째 아들을 중심으로 본문을 이해한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형제를 포용하는 '관용'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추면 또 어떨까요? 이번에는 한 없는 사랑으로 자녀를 다시 끌어 안는 '용서'라는 주제를 다룰 수도 있습니다.

** 이번에는 교재에서와 같이 용서라는 주제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둘째 아들이 지은 죄의 심각성에 대한 것입니다. 그가 지은 죄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쉽게 용서 받을 수 없을 만큼의 큰 죄입니다. 그는 비록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하기는 했으나 아버지의 뜻대로 따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욕심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습니다. 타국에서 아버지의 재산을 흥청망청 모두 소진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비참한 거지 꼴로 돌아왔습니다. 유산이라는 것이 아버지가 죽은 후에야 자녀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그가 한 행동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심각한 죄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용서하고 다시 기쁘게 맞아들였습니다. 아들이 철저하게 용서를 구해서도 그렇다고 평생 종처럼 살기로 결심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이기에 그저 돌아 온 아들을 용서한 것입니다. 아니,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도 전에 그를 항상 기다렸던 것입니다.

** 아들이 지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없는 사랑으로 그를 용서하는 아버지의 사랑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바로 탕자처럼 하나님을 떠나 한 없이 그로부터 멀리까지 갔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고, 죽음의 길인 줄도 모르고, 우리는 하나님 없이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서 잘 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침내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때, 하나님은 넓은 사랑으로 우리를 다시 품어주셨습니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아니, 알고보니 아버지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그 때에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 우리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한 없는 사랑과 용서를 깨닫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여 시선을 돌리게 만듭니다. 바로 우리의 형제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하나님의 큰 용서의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들도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용서는 우리 자신의 의로움을 기대할 때에는 불가능한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는 당연한 것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18:21-35의 말씀을 인용하고 마치겠습니다.


  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1.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3.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4.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5.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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