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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공과 19(150531)

2015.05.28 12:30

서승철 조회 수:117

새싹공과 19: 예수님을 따라요

 

v  공과본문: 사도행전 4:1-21

v  공과주제: 믿음의 위기가 찾아올 때에도 믿음을 굳게 붙잡아요.


 1. 본문 안내

** 유대인과 부활: 유대인들이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특히나 싫어했던 까닭은그들이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유대인들이 부활 자체를 믿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예수님이 살았던 1세기의 유대사회에는 부활사상이 보편적으로 확산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유대교의 실천적 삶의 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미워한 까달은 그들이 부활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도들이 부활에 대한 그들의 철절한 믿음을 깨뜨리려 했기 대문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달랐던 것일까요?

유대인들의 부활에 대한 믿음의 전통은 이사야서 26:19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주의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이런 부활의 신앙이 생긴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베발론의 침략 이후로 수백년 동안 끊임없이 주변의 강대국들, 헬라와 로마 제국에 의해서 침략을 받아야 했습니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채로 오랜 시간을 살아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받았습니다. 기본적으로 다신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헬라나 로마의 입장에서 볼 때 유대사회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그들 만의 독특한 유일 신앙의 전통을 꺾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헌신하는 그들의 신앙 때문에 유대인들은 제국에 비협조적이었던 것이 사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강압적인 폭력으로도 유대인들의 신념체계를 무너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박해와 죽음의 위협에도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저항했습니다. 때로는 무장세력을 통해서 때로는 비폭력 종교운동의 방법으로 말입니다. 철저히 율법에 입각해서 살기로 결단한 바리새인들이 등장하게 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입니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어둠의 시기를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에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자 유대교 내에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믿음을 지키다 의롭게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기본적으로 현세적 종교의 특징을 가지고 있던 유대교는 죽음의 문제를 두고 씨름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지키고 복 주시기로 약속하셨는데, 율법에 명시된 그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인가?

부활의 신앙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유대교적 해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의인의 억울함을 풀어 주실 것입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아니 이 모든 악이 존재하는 세상 역사의 마지막에 가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의인의 편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마침내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모든 악이 심판을 받고 심지어 죽음마저도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의인들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악의 편에 서 있던 사람들은 심판과 죽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로마의 압제 아래에서 독립을 꿈꾸며 품고 있었던 부활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대교의 부활신앙과 사도들이 전파한 부활의 믿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이미 앞에서 다 언급하였지만 핵심만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유대교에서는 부활이 역사의 끝에가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악이 실재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의인의 죽음이 계속해서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사도들은 여전히 로마라는 거대한 악의 실체가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 부활이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둘째, 유대교에서는 부활은 개인적인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사건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부활이 예수라는 한 개인에게서만 일어났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의인들에 대한 부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한 개인의 부활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사도들의 복음을 더욱 싫어하는 이유,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전파를 싫어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만일 예수가 부활한 것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어떻게 되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오랜 암흑의 역사 속에서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순수성을 지켜오던 유대교의 모든 전통이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비록 가설이고 짐작이었지만 부활에 대한 그들의 믿음체계가 완전히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만일 예수가 정말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의인이 되는 셈입니다. 의인의 부활을 믿어오던 유대인들에게 죄인의 죽음이 의인의 부활로 역전되는 충격인 것입니다. 의인이라 자부했던 유대인들이 오히려 의인을 박해한 죄인, 심판대 앞에 설 수밖에 없는 악인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오랜 신앙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최소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예수의 부활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담대한 베드로와 요한: 유대인들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부활에 대한 아이디어를 종교적 신념으로 체계화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막연한 추측, 짐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그러한 애매모호함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고안해 낸 어려운 종교 철학적 사상을 이해하기에 그들은 무식했기도 했지만, 그들은 진짜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죽음과 죄와 절망과 악을 깨뜨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다른 이들은 믿지 않을지라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그들은 그것을 믿지 않는 다는 것이 오히려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경험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은 공회에 끌려 가서도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공회는 유대사호의 최고 재판기관입니다. 공회에서 편결이 내려지면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명분만 잘 꾸며 낸다면 사람을 죽이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유대사회로부터 출교시켜서 철저한 사회적 고립 상태에 처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공회에 서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살기 위해서 자신의 신념따위는 쉽게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경험은 그들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베드로는 오히려 공회를 향하여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2. 공과를 위한 안내

이번 공과의 내용은 공회에 끌려가서도 담대하게 믿음을 잃지 않았던 베드로와 요한처럼 우리들도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삶 속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경험했던 비슷한 방식의 시련은 잘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삶 속에도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아이들은 기독교적 신앙을 무시하는 분위기에 노츨 될 수도 있고 일방적으로 반기독교적 내용을 가진 지식을 배우도록 강요 받을 수도 있습니다. 가치나 기준을 잃어버린 오늘날의 문화를 생각한다면 문제는 훨씬 심각합니다. 동성애가 상식이 되고 합법화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바른 성경적 가정관이나 성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실제로 어떤 상황 속에서 신앙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물어보면 좋은 나눔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논리나 설명으로도 다 담아낼 수 없는 구원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믿음의 시련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어떤 방식, 경로로 나타나든지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은 순간적으로 약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을 잃지 않게, 믿음이 더욱 강건하게 되게,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게 말입니다. 그런 신앙의 자세는 마침내 하나님과 사람들이 보기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