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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공과23(150628)

2015.06.23 09:59

서승철 조회 수:113

푸른공과 23: 2의 인생

 

v  성경본문: 디도서 3:3-8, 고린도후서 5:17

v  공과주제: 칭의와 양자됨과 중생

 

이번 공과에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라고도 할 수 있는 세 가지 개념: ‘칭의’, ‘양자 됨’, ‘중생’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아주 단순하게만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한 문장으로 표현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한자 말로는 이신칭의(써 이   믿을 신   일컫을 칭   의로울 의)라고도 합니다. 아마 교회를 다니다 보면 간혹 들어보실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보다 정확하고 동시에 압축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바른 믿음 위에 서 있게 된다면 그 이상으로 바랄 신앙의 내용이 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믿음으로써 받는 구원이란 표현은 사실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바울의 신학적 견해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물론 이 말은 다른 구원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표현이 부족하다는 말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구원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삶에 적용(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에 있어서는 믿음 말고도 다른 관점들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야고보서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문제를 단지 믿음의 차원에서가 아닌 행함의 차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또 공관복음서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통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지금까지의 요지는 이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란 표현은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표현한 바울의 신학에 대한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세 가지 중요한 개념, 칭의, 양자 됨 그리고 중생이란 표현도 다 이 바울 신학 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봅시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구원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는 말이지요. 믿음? 아는 말이고, 구원? 역시 익숙한 말입니다. 하지만 알고보면 이 신앙고백의 의미를 재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장 큰 착각은 이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 믿어야 구원 받는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둘을 같은 의미에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둘은 사실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다는 말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 어떤 조건이나 가능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가진 힘이나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이 있어도 그것으로 구원을 살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모두가 고상한 가치라고 여기는 지식이나 경건 또는 고행이나 그 어떤 선행으로도 하나님의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력합니다. 전적으로 수동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믿어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믿어야 해! 믿어야 해! 구원을 받으려면 믿어야 해! 이렇게 말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위한 믿음으라는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인간에게 능력과 가능성이 생기게 됩니다. 내가 믿어서 구원을 받았어! 네가 믿지 않아서 구원을 받지 못했어!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아닌 를 강조하게 됩니다. 바울의 신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니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오해한 것입니다.

 

이런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보다 좋은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미 성경에 그 표현을 기록하였습니다. 에베소서 2:8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에게 어떤 능력이 있거나 가능성이 있을때 우리는 그것을 은혜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대가라고 말합니다. 은혜는 철저히 우리의 가능성과 조건을 배제하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전혀 그럴만한 자격이 되지 못하는데 말도 안되는 엄청난 혜택을 받았을 때, 그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이를테면 거지가 왕자가 되거나 사형수가 풀려나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구원은 선물입니다. 나의 쪽에서는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값없이 받은 엄청난 선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이렇게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믿어야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아들을 보내시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그 아들을 다시 살리심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는데 우리가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구원의 사건은 일방적입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무기력할만큼 철저하게 수동적이고 무능력합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앞에서 우리가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 개념: 칭의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이 바로 칭의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잘라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 반대입니다. 우리에게는 의롭다 할만한 어떤 조건이나 내용들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를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나 자신의 의를 포기할 때 역설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의를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나옵니다.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두 번째 개념: 양자됨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신다는 것은 단지 우리를 인정하신다는 정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가 덧입혀졌다는 말은 이제 우리가 의로우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게 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진바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보증해주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성령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친히 우리가 그의 아들인 것을 확증해주십니다. 그러니 누가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꼭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 16절 말씀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세 번째 개념: 중생

중생(거듭 중  태어날 생), 한자 말이라 어려운데 알고보면 뜻은 아주 단순합니다. “거듭 태어남여기에는 두 가지 시제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입니다. 이미 우리는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를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받아들이게 되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 거듭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겉은 그대로지만 속은 완전히 새롭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이, 우리의 존재가 존혀 새로워진 것입니다. 또 하나의 시제는 미래입니다. 우리는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된 우리들은 이전과는 변화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이나 후나 전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믿음 안에 거한다는 증거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가 이전에는 죄의 열매를 위해서 살았을지라도 이제는 의의 열매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전에는 어둠의 자녀처럼 살았지만 이제는 빛의 자녀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미 우리의 속이 달라졌다면 이제는 우리의 겉도 달라져야 합니다. 로마서 12:2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