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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공과08(150301)

2015.02.27 09:39

서승철 조회 수:112

8: 하나님이 주신 재능

성서본문: 누가복음 19:11-26

공과주제: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재능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자.

 

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 교사를 위한 본문 안내

** 달란트 비유와 므나 비유: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와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므나 비유는 둘 다 형식상으로는 Q자료(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동시에 나오는 자료)에 속하고 내용상으로는 종말설교에 해당합니다. 이 둘은 기본적으로 상당히 비슷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보면 아주 다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몇 가지 차이점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화폐의 단위가 다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달란트가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므나가 사용되었습니다. 달란트는 금을 계산하는 단위로서 아주 큰 금액의 돈을, 반면에 므나는 은을 계산하는 단위로서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의 돈을 지시 합니다. 1달란트가 성인 하루의 품삯인 1드라크마의 6000, 6천 드라크마에 해당한다면, 1므나는 고작 100드라크마 정도에 불과합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는 주인이 돈을 어떻게 종에게 배분했는가 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주인이 달란트를 종의 재능에 따라서 차등분배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또 한 사람은 두 달란트를 그리고 또 한 사람은 한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전혀 다릅니다. 주인은 10명의 종에게 모두 똑같이 한 므나를 지급하였습니다.

** 왕위를 받으러 가는 귀인: 달란트 비유에서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으나 므나 비유에서 주인은 왕위를 받으려고 잠시 멀리 떠나는 어떤 귀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지금 당장은 없는 것 같으나 언젠가 그가 다시 올 때는 왕으로서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 귀인은 곧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이 말씀이 주어진 배경은 11절 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마지막에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자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기대했습니다. 사실상 사람들은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도 오해했지만 그를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도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당장에 무슨 큰 일이 벌어질 줄로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유대가 로마로부터 독립하게 된다든지, 이스라엘이 새로운 종교적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든지 말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람들의 그런 오해들을 바로 잡아주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또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때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지금 멀리 떠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도 오히려 반대로 지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복음이 기록된 시점의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도 이미 예수님의 재림이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지연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제 현실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인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종들에게 주인의 사명이 맡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그가 다시 올 것입니다. 그것도 왕이 되어 심판하실 자로 오실 것입니다. 그날에는 칭찬과 책망이 나누어지고 상과 벌도 갈리게 될 것입니다.

** 충성된 자와 악한 자: 종들은 모두 주인으로부터 공평하게 하나씩의 므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사람은 그 하나로 열을 남기기도 하고 또는 다섯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남긴 것이 많든 적든 그들은 주인이 다시 왔을 때에 왕이 된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그들이 남긴 므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권세를 주인으로부터 얻었습니다. 열을 남긴 자는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그리고 다섯을 남긴 자는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종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주인으로부터 므나를 받던 처음부터 그것을 수건으로 싸 두었습니다. 장사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건, 그 종이 단지 게을렀거나 무능력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핵심적인 문제는 주인에 대한 오해에 있습니다. 21절에서 그는 주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무서워했습니다.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핑계에 불과합니다. 정말 그가 주인을 그렇게 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는 주인의 말처럼 은행에라도 돈을 맡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장사도 하지 않았고 은행에 맡기지도 않았습니다.

본질은 주인에 대한 그의 미움이었습니다. 14절을 보면 어떤 백성들은 그 귀인이 자신들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것은 귀인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자신들 위에 다스리는 사람이 생기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인을 엄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그 종의 본심은 결국 미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단순히 소극적으로 게으르거나 무능력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악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주인의 때에 주인의 즐거움에 함께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2. 새싹교회 공과를 위한 안내

** 본문의 주제와 내용 자체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지연과 제자들에게 맡겨진 사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므나를 맡겼다는 말씀은 결국 주님이 다시 오실때까지, 그리고 주님의 다시 오심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때까지, 제자들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주제를 새싹교회의 공과에서 다루는 것은 당연히 적절하지 않습니다.

** 조금은 알레고리컬하지만 우리는 교재에서와 같이 소명대신 재능이란 주제로 본문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본문을 본문이 위치한 누가복음 전체의 맥락으로부터 조금은 독립적으로 다뤄봄으로써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교훈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 먼저 주인이 열 명의 종에게 모두 똑같이 하나의 므나를 나눠준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 모두에게 각자 하나씩의 재능을 주셨습니다. 모양은 다르고 크기도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받지 못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기신 재능이 무엇인지를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면서 나에게 없는 다른 사람의 재능을 부러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꼭 알맞는 재능들을 하나씩 나누어주었습니다.

**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를 아는 것보다 그 재능을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 사용하는 것인가 입니다. 재능을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건 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서로 다른 재능을 주신 이유는 각자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위해서 재능을 사용해야 합니다. 자기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 무엇보다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마지막 종이 실패한 이유는 그의 게으름이나 무능력함이 아니라 주인에 대한 그의 미움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큰 재능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재능이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재능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재능은 그것이 무엇이든 최고의 선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재능에 집중하기보다는 항상 그것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칭찬을 받은 종들이 주인을 항상 기다리면서 열심히 장사를 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도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