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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나눔03(150301)

2015.02.28 21:30

서승철 조회 수:133

그리스도인의 연애

 

사랑에 대한 아가서 8:6의 말씀은 대단히 직설적입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 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사랑에 대한 수많은 정의를 들어보았지만 이만한 명언을 다시 들어본 일이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성경이 이런 식으로 여과 없이 말해도 되나 싶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참 맞는 말이다 싶습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다다시 봐도 정답아닙니까? 물론 어떤 분들, 그러니까 성경을 좀 잘 아시는 분들은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이 말씀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 아닙니까? 당연히 맞습니다. 정말 죽음처럼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신 그 분이 바로 하나님 맞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냥 있는 그대로 말씀을 받아들여도 괜찮습니다. 뭔가 의도를 파악하려고 눈에 힘주는 것을 가끔은 풀어도 좋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노래이기 이전에 아가서는 분명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노래인 것도 사실이니까요.

청년인 당신이 만약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면 아마도 이런 지독한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표현이 좀 그래서 그렇지만(?) 이런 사랑은 나이들어서는 하기 힘듭니다. 하려고 해도 체력이 안 받쳐줘서 못하거든요. 그러니 저는 먼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만일 청년이라면 청년답게 사랑하십시오라고 말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노래를 지어내는 시인처럼 그리고 사랑을 위해서라면 노예라도 될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십시오. 그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자연을 거스르면 어색해지고 탈이 납니다. 그리고 그거 좋은 일입니다. 별 감흥없이 미지근하게 사랑하는거, 그거, 청년 사랑아닙니다.

하지만 사랑이 아무리 불 같고 지옥 같아도 그래도 진짜 불이 되버리거나 지옥이 되어버리면 곤란합니다. 이성을 잃고 욕망에 사로잡혀버리는 순간 잘 되면 짐승, 못 되면 악마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굳이 이런 식으로까지 과장되게 말할 필요는 없는데, 아가서를 반대로 흉내좀 내보았습니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할 내용이기도 하니 장난으로는 받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세상의 연애와 그리스도인의 연애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기독교는 세상적인이라는 표현을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세상적인 딱 그러면, 일반 부정적인 의미를 깔고 갑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방식이 항상 이런 식으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좋은 점도 많고 때로 배울 점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때의 세상적인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말해서 비그리스도적인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굳이 세상의 연애와 기독교의 연애를 비교하기 보다는 그리스도인의 바른 연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짜를 아무리 연구해도 막상 가짜를 만나면 쉽게 구별이 안 가지만 진짜를 제대로 알고 나면  단번에 가짜를 가려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의 연애는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느 광고에서간 보았는데, 어떤 남녀가 우리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 두세요!” 외쳤는데, 이건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아닙니다. 사람은 모두 온전하지 못합니다. 겉은 신사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니 법 없이도 살 성인군자니 아무리 그래도 실제로 만나보면 그냥 병자입니다. 상처 투성이인데다 감정은 복잡하게 꼬여 있어서 언젠가는 그 천사 군자와 백퍼 싸움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연애는 서로의 상처와 연약함들이 치료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온전한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연애는 이전까지 혼자서는 절대로 하지 못했던 신앙의 새로운 세계로의 영역 진입입니다. 이제는 둘이 함께 하나님 앞으로 한 발 나아가 그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연애하면서 둘이만 있으려고 주일 예배도 안 드리고 신앙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데, 조심성 없고 미련한 행동입니다.

그렇다고 둘이 만나서 무슨 사역자처럼 살아라는 것도 아닙니다. 뭐든지 넘치면 탈이 나는 법, 하나님은 사랑하라고 했지 사역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날 때마다 기도하고 만날 때마다 말씀 읽고 다시 만날 때에는 선교계획 세우고 그러면 그게 무슨 사랑입니까? 고상한 척, 재미 없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초강력 에너지입니다. 엔돌핀을 막 돌게 하고 우울증으로 드러누운 병자를 벌떡 일으키는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 안에서 만나되 서로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십시오. 이렇게 사랑하다가는 다시는 다른 사랑 못할까 걱정될 만큼 말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연애의 목표는 서로에 대해서 솔직하게 알아가는 것입니다. 결혼이 하나님 안에서 둘이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면 그 전 단계인 연애는 하나님 안에서 둘이 서로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데 벌써부터 하나가 될 일들을 하면 안 됩니다.

보통 연애 초기에는 자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느라 애를 많이 씁니다. 화장도 꼬박꼬박 하고 말투도 세련되게 하고 심지어 밥도 평소 양보다 적게 먹기도 합니다. 이건 어느정도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은 당연하기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면도도 안하고 추리닝만 입고 다니는 그런 사람은 솔직한 사람이 아니라 더러운 사람입니다. 성경에서도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 했거늘…, 그러나 어느때까지 이런 식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숨기는 것은 일종의 사기행각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이 사람 괜찮다싶어서 결혼하면, 그게 바로 사기결혼입니다. 그런 사람 정말 많이 봤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부터는 상대방에게 자기를 솔직하게 개방하는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가능하면 모든 것들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별히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져서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공유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은 뭐고 삶에 대한 가치관은 또 어떠하고 무엇보다도 신앙에 대한 이해를 나눠야 합니다. 대화를 할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상대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설득하려 하거나 강요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인셉션을 보셨나요? 영화를 보면 사람에게 생각 하나를 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기 생각을 상대에게 주입시키는 것보다 대화를 통해서 나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욱 쉽다는 것을 알아챌 것입니다. 그렇게 나를 변화시킬때 상대도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연애는 질서와 한계를 잘 지키는 사랑입니다. 모든 가치들이 상대화되고 모든 권위들이 무너진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는 소위 쿨한 사랑법이 유행입니다. 우리의 시대를 지배하는 모토는 이렇습니다. “절대적 기준이란 없다. 유일한 진리가 있다면 네 자신이 원하는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틀렸습니다. 이 달콤한 거짓말은 사랑의 값어치를 시장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싸구려 물건처럼 만들어버리고 오늘날 수많은 가정들의 평화를 파괴하는 주범입니다. 참된 자유는 무엇이든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한계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적인 삶 안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때 가장 빛납니다. 마찬가지로 참된 사랑도 질서와 한계 안에서 서로를 소중하게 지켜줄 때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연애는 사랑의 과정이지 결론이 아니기때문에 이 사실은 더욱 중요합니다. 서로를 알아가는 연애의 과정은 헤어지는 것으로 끝나든 더욱 함께 하는 것으로 끝나든 상처나지 않은 꽃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지배하려 하지 말고 지켜주려 하십시오.

햇볕과 바람이 따사로워 졌습니다. 봄이 오고 꽃이 폈습니다. 바야흐로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 되었습니다. 사랑하고 있는 커플들은 아름답게 사랑을 피어나가시길. 사랑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위해서 자기를 사랑스럽게 가꾸고 사랑을 꿈꾸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