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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나눔04(150308)

2015.03.05 18:58

서승철 조회 수:115

그리스도인의 연애와 관계

 

사랑이 뭐냐? 사람들은 이런 식의 질문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질문을 받는 순간 우리는 마치 우주의 미아라도 된 것처럼 출구를 찾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정의 자체를 묻는 질문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 주변에는 이런 질문들이 얼마든지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데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인가? 이쯤만해도 두뇌 뉴런시경계에는 벌써 전류 과부화가 걸립니다. 잘못하면 터질(뚜꺼 열릴) 수도 있습니다. 자고로 철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랫 동안 이런 종류의 두통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질문을 중단할 수가 없기 때문에 치료제 또한 없습니다. 고통 자체를 사랑하는 것만이 유일한 약이라면 약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왜 이런 고통을 스스로 끌어안는 것일까요? 단순하게만 생각하자면 행복은 분명 고통을 최소화 상태일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참된 행복이 의미에 대해서 묻고 본질을 추구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 중에서 그런 고도로 복잡한 작업을 가장 완벽하게 수행해 낼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입니다.

돌아와서, “사랑이 뭐냐?”라고 다시 물어봅시다. 여러 대답이 가능할 것입니다. 추상적인 형용사로 치장된 시구 하나로 여운을 남길 수도 있고 아니면 드라마틱한 경험담을 잔뜩 늘어놓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참으로 묻고자 하는 것은 사랑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랑은 관계다입니다. 앞에서 실컷 무게를 잡아 놔서 이런 뻔한 답이 조금은 식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혼자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사랑이면 당연히 관계겠지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두 가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관계는 항상 둘 이상의 사람과의 만남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좁은 의미에서의 관계일 뿐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관계는 우리 주변의 모든 영역에서 적용되는 가장 근본적인 삶의 실재입니다.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 자연과 맺는 관계, 신과 맺는 관계, 우리는 심지어 나 자신과도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모든 것이 관계이고 우리는 바로 그 관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다음으로 관계는 다 똑같은 관계가 아닙니다. 좋은 관계가 있고 좋지 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은 단지 서로 다른 둘이 만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 만남의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방향으로의 관계발전이라, 그것이 무엇일까요?

여자 A가 있습니다. Aa1, a2, a3 … a 11과 친구 사이입니다. 그리고 남자 B가 있습니다. Bb1, b2, b3과 친구 사이입니다. 어느날 A B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둘 사이에는 새로운 관계 ‘Love’, 이니셜 L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A가 가지고 있는 관계는  L, a1, a2, a3 … a11입니다. 그리고 B가 가지고 있는 관계는 L, b1, b2, b3입니다. 이때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LAB가 이전에 맺고 있었던 다른 모든 관계들보다 우선합니다. 그것은 정상입니다. L은 그만큼 강력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때로 어떤 L은 엄청난 중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 외의 모든 관계들을 자기 안으로 흡수하려 합니다. ‘난 너만 있으면 돼라고 달콤한 속삭임이 넌 나만 바라봐라는 협박으로 변해버립니다. 핸드폰이 압수수색 당하고 여차하면 연락처가 500개가 5개로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그건 좋은 Love가 아닙니다. L이 좋은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마치 빅뱅처럼 그것으로부터 관계들이 창조되어야지 반대로 블랙홀처럼 관계들을 흡수해서는 안 됩니다. AB가 만나서 L 이 되면 순간적으로는 대문자 L이 소문자 친구들을 압도해버리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관계가 축소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L의 포텐이 터지면 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더 넓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바로 그런 관계의 확장이 그리스도인의 연애를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의 연애에는 둘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불편함 없이 쉴 수 있는 관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연애에서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관계는 바로 교회 공동체와의 관계입니다. 조금 후에 원리적인 이야기를 하겠지만 먼저 좀 더 실제적인 이야기부터 해봅시다. 교회 안에서 연애하는 것,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이유는 다양한 관계들이 교회라는 한 공간 안에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있고 장로님이 있습니다. 여러 어른들이 있고 아주 어린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는 가족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자기 가족과 친한 다른 가정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별다른 느낌 없이 교회에 오고 가지만 생각해보면 교회 안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의 그물망은 이처럼 아주 복잡합니다. 평소에는 이런 관계들을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관계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또 안정되게 유지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연애가 시작되면 이전까지는 없던 아주 이질적이고 독특한 관계 하나가 끼어 들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의도치 않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보다가 피곤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아예 연애 중이라는 사실 자체를 철저하게 비밀로 하기도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또는 타이밍에 따라서 이런 행동은 아주 지혜로울 수도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둘 사이의 사랑의 관계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기까지는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신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이런식의 비밀연애가 계속되면 결국 둘 중 한 사람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교회 밖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가 교회만 오면 갑자기 남처럼 변해버리는 사람은 헷갈리는 사람입니다. 항상 일관성을 잃지 말아야 하고 때가 되면 두 사람의 사랑의 관계가 공동체라는 더 큰 관계 안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이질적이고도 독특한 사랑의 관계가 공동체 안에 완전히 융화되면 다시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안정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더 주목받을 일도 없어지고 다른 사람들 눈치봐가면서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하는 고민도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뭐든지 급하지 않고 천천히 가는 것이 좋습니다. 급하면 체하는 법이고 꾸준히 가다보면 도달하는 법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연애에 대한 몇 가지 원리적 이야기를 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원리들도 여전히 관계라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일단 대 전제는 이것입니다. “사랑은 관계를 창조한다.” 그러므로 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사랑의 본질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각자가 속한 공동체 혹은 셀로부터 따로 분리되어서 둘 만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이 경우에 하나의 관계는 새로 창조되었지만 다른 많은 관계들은 무너졌습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의 연애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연애는 각자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관계들을 존중해 줄 때 더욱 아름다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자기 중심적이지 않고 타자 중심적일때, 그 사랑은 공동체 안에서 덕이 되고, 그러면 결국 많은 사람들의 축복과 기도 속에서 자나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원리, 즉 사랑 때문에 다른 관계들을 소흘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리는 바울이 말한 대로 품위 있고 질서 있는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연애가 항상 격식을 따져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둘 만의 시간 동안에는 하나님이 정한 경계 안에서 자유를 누릴 줄도 알아야 그게 사랑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공동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조금 다릅니다. 특별히 그 시간이 예배나 친교의 시간이라면 공동체의 문화나 분위기에 걸맞는 행동을 할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모두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 시간에 어느 한 커플이 설교 내내 손을 꼭 잡고 사랑의 향내를 사방팔방으로 풍긴다면 예배 분위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론 이건 좀 심한 과장이지만 교회 안에서의 지나친 애정표현은 분명 적절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원리는 사랑이 신앙을 더욱 자라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연애를 하면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집니다. 두 사람의 사랑의 관계가 각자가 하나님과 맺고 있었던 믿음의 관계를 깎아먹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역시 관계가 파괴되었으므로 옳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연애는 오히려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믿음이 더욱 좋아져야 합니다. 사랑이 각자의 삶에서 실재가 되어가는 만큼 믿음도 각자의 삶 안에서 더욱 실재가 되어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전에는 자기를 위해서조차 기도 하지 않던 사람이 사랑을 하면서부터 그 사람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사람 만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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