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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공과11(150322)

2015.03.13 13:23

서승철 조회 수:149

2: 오염된 환경 되살리기

성서본문: 호세아 4:1-3

공과주제: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세계를 아름답게 보존하자.

 

[질문]

  •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시대는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세계가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생태계 위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생태계가 무너지는 원인은 무엇때문일까요?
  • 창세기 1:28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태계를 보전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안내]

1. 오늘날의 생태계 위기

1) 지구 온난화(자료출처: 위키백과)

지구 온난화는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인 바다와 짚표 부근 공기의 기온 상승을 의미한다. 20세기 초부터, 지구 표면 온돈느 1980년에 비해 약 2/3가 증가한 0.8정도 기온이 상승했다. 기후 온난화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애매하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90% 이상의 온실 기체 농도증가와 화석 연료의 사용이나 산림 벌채와 같은 인간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는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서 생기는 해수면 상승, 강수량의 패턴 변화, 아열대 사막 지역의 확장이 있다. 또한 기구 온난화는 극한 기후와 폭염, 가뭄과 폭우, 해앙의 산성화를 초래하고 때로 종의 멸종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2) 오존층 감소(자료출처: 위키백과)

오존층은 태양이 방출하는 자외선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1966년 영국의 남극탐사대가 남극 대기권에서 오존층 구멍을 처음으로 발견했고, 독일 막스플랑연구소에서 위성 관측을 통해 오존홀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만일 오존홀이 계속 커기제 되면 대기권 안으로 자외선 투과율이 높아지게 되면서 식물의 엽록소가 감소하고 광합성 작용을 억제하며 인간과 동물에게 피부암을 유발시키게 된다. 오존층이 파괴되는 주요 원인으로는 냉장고 등의 냉매로 사용되는 프레온 가스나 비행기와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산화질소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세계는 1987년 오존층 파괴물질을 규제하는 몬트리올 의정서를 채택하였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1996년부터는 오존층 파괴 물질의 생산 및 수입이 금지되었고, 개발도상국은 1997년부터 단계적으로 감축해 2010년에는 사용이 완전 금지되었다. 다행히 전 세계의 이러한 노력덕분에 현재에 와서는 오존층이 예상보다 빨리 회복중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3) 자원고갈(자료출처: 위키백과)

지구에 매장되어 있는 자원의 양은 한정되어 있지만산업화와 무분별한 자원개발으로 인해 자원의 양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왼쪽의 그래프는 석유 생산 정점 시나리오 그래프로서, 석유 및 가스 생산의 정점 및 다른 자원의 고갈에 관한 연구들의 결과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0-2010년을 기점으로 대부분의 자원 생산량은 한계에 도달했으며, 그 이후부터는 급격한 속도로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다.

4) 핵폐기물(자료출처: 위키백과)          

2011 3 11일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에서 지진이 발생함에 따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원전 안전을 위해서 1-3호기를 긴급 정지시켰다. 그러나 지진으로 인해 주변의 송전선로가 무너지면서 원전은 외부전력과 차단되게 되었다. 자동시스템에 의해서 비상용 디젤발전기가 돌아가기 시작했으나, 지진발생 50분 후, 해일이 발전소를 덮치면서 디젤발전기가 침수되었고 고장이 났다. 이로써 후쿠시마 제1원전은 원자로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전력마저도 없는 블랙아웃 상태에 빠졌고, 이로 인해 원자로 냉각을 위해서 냉각수 펌프를 가동할 수 없게 되면서 원자로 내부의 핵연료가 주변의 냉각수를 증발시켜 버렸다. 결국 원자로 내부 온도는 섭씨 1200도까지 상승했고, 1호기를 시작으로 수소폭발이 일어나면서 방사능유출이 시작됐다.

이 사고로 대기에 노출되었을 방사성 물질의 양은 37경 베크렐이상으로 추정되고 국제 원자력 사상 평가척도에 대한 잠정적인 상태 레벨7, 체고 레벨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한 국가이외에 광범위한 지역에까지 방사능 피해를 줄 수 있는 규모이다. 또한 2호기에서 누출되는 고농도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의 양은 도쿄 전력 자료의 수량 및 농도에 근거하면 2011 4 19일 기준으로 330경 베크렐이다.

  

2. 생태계 파괴의 원인: 인간의 이기심

18세기 중엽, 영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산업혁명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인간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균형을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로 자연은 오직 인간을 위한 도구와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인간은 오직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얼마든지 자연을 파괴했습니다. 자연은 스스로 오염을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자정능력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로는 이간으로 인한 오염의 정도가 자연의 자정능력을 훨씬 뛰어넘기 시작했고 오염은 시간이 갈수록 계속 축적되었습니다.

 

3. 정복하고 다스리라?

서구의 기독교 사회는, 특히 산업화 이후에 개발논리로 무장한 서구는 창세기 1:28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을 하나님에 대한 창조의 신앙 안에서 받아들여야 하는데,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난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신앙은 때로 왜곡되어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자연을 지배해도 좋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당신이 창조한 세계를 아름답게 보전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청지기로 부르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창조의 세계를 완성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의 세계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입니다. 빛도, 나무도, 물도, 새도, 모든 짐승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과 상호보완적인 관계안에 있으며, 하나님은 그 관계를 잘 지켜나가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4. 우리들의 노력?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생태계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부터 시작됩니다. 자연을 도구와 수단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지으신 소중한 공간으로 볼 것인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이기심을 내려놓는 그 순간부터 세상은 조금씩 새로워집니다.

보다 구체적인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우리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쉬운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쓰레기를 최대한 적게 버리기, 재활용 하기, 음식물을 남기기 않기, 물 아껴 쓰기, 에너지 절약하기 등등 우리의 삶이 사소한 습관들을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그린피스(Green Peace)와 같은 환경NGO단체의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또는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같은 문제로 인하여 환경이 파괴되는 나라와 지역을 위하여 자신이 가진 작은 물질을 기부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행동으로 전환될 때, 기적은 시작됩니다.

 



1: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성서본문: 요한복음 3:16-17, 로마서 5:8

공과주제: 복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안내>

본 공과에서는 복음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 사랑의 창조 - 죄와 타락 심판과 형벌 예수 그리스도 영원한 생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교재에서는 실제로 학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는 시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고 그 가운데 나의 죄됨을 회개하며, 나아가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나의 구원주로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렇게 단지 믿음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경험한 자는 이제 이전까지의 세상적인 삶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아울러 교재에서 소개하고 있는 영화 다리’(Most)를 같이 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듯 합니다.

교사들을 위한 이번 안내에서는 작년 청년부 리더들과 함께 나누었던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관하여 썼던 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복음의 어원: 원래 복음이라는 말은 새로운 왕의 탄생을 가리키는 말로써, 새 왕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시작될 새로운 시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 복음이란?: 마가복음 1:1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탄생’과공생애의 사역’ 그리고 그의십자가’와부활’ 그리고 그의승천’과다시 오심’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그리고 마침내 완성될 새로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땅에 시작되고 마침내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현실성입니다.

복음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우리의 질문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누구인가? 둘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땅에 주어진 복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셋째, 복음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엇인가?

 

#. 첫 번째 질문, “예수는 누구인가?”

신약성서는 역사 가운데 있었던 한 선지자와 같은 인물을 가리켜 단지 한 명의 인간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된 신’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성서는 이러한 이해를 다양한 언어표현으로 고백하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전통, 특별히 중간기라 불리는 묵시문학의 전통에서는메시아’나인자’로 표현되었고, 신약성서에 와서는 하나님과의 친밀하고도 독특한 관계의 표현으로서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되었습니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예수님의 신성을 고차원적으로 이해했는데, 곧 예수님을 경배를 받으실주님’ 혹은하나님 자신’으로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표현은그리스도’입니다. 신약성서 시대의 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사실상 히브리어 메시아에 대한 그리스식 표현이기는 하나, 교회 공동체는 이를 복수가 아닌 단수의 의미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헬라식 표현을 고집하였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의 어원은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이 땅에서 행하신 사역에 초점을 맞춘 표현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죄와 악의 역사를 종식시키고 의와 생명의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가져오셨다는 것입니다.

 

#. 두 번째 질문,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이 땅에 이루어진 복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첫 번째 내용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입니다. 구약성서는 인간의 타락과 죄로 말미암아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성전과 율법이라는 간접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 된 성육신의 사건은 그러한 이해전통을 완전히 깨뜨렸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그의 창조의 세계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죄의 상태를 초월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의 신앙을 역사 안에서 그 자신의 몸을 통하여 구체화시킴으로써 증명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이 복음의 내용 때문에 율법이나 성전과 같은 2차적 수단의 도움이 없이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관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와 같은 놀라운 관계의 신비를 요한복음 1:12에서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자는 이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죄인이 아니라 자녀가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의 말과 같이 이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은 그의 안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의 기자는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10:19-20)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복음의 두 번째 내용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경험한 바이며 또한 그에 대한 해석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이해했든 혹은 그를 메시아로 이해했든, 예수님은 그들의 모든 기대를 저버리고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할 하나님의 그리스도로서의 가장 위대한 사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와 역사의 죄와 죽음의 실존을 끌어안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용서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로써 그의 부활은 이제 죄 사함의 최대한의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 그의 죽음은 단지 용서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죄와 죽음에 대한 심판으로서의 부활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를 위한 의와 생명의 부활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롬 4:25에서 다음과 같이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말했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의 실존, 곧 죽음이 극복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곧 우리에게는 모든 개인적인 삶과 공동체적인 역사의 비참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것에의 완전한 승리인 부활의 생명 소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진 복음의 마지막 세 번째 내용은 종말의 때에 마침내 이루어질 정의와 평화와 그리고 생명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지만, 지금 그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고, 미래에 우리를 위하여 다시 오시기 위하여 준비 중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오심’과다시 오심’ 사이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그리고 마침내 완성될, ‘이미’와아직’ 사이의 변증법적 하나님 나라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 안으로 초청되고 또한 그에 대한 믿음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고백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역사 안에는 끊임없는 고통과 악이 실재합니다. 죽음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모든 연약한 실존은 여전히 역사 속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을 통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역사 안에서 이미 성취하신 그 생명의 질적인 완성을 마침내 역사의 마지막에는 보편적인 사건으로 확장하실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때에는 모든 비밀은 밝혀지고 모든 악은 심판을 받으며 모든 연약한 것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질 것입니다.

 

#. 세 번째 질문, 복음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엇인가?

복음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에 있습니다. 곧 예수님은 그 자신 스스로가 복음이었지만 또한 동시에 그 자신이 복음에 일치한 삶을 사심으로써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복음과 일치한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배우고 연구하고 또한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이 무엇인지를 여기에서 몇 가지로 간략히 소개하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첫째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 안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성서는 우리에게예수 자신이 곧 복음이다”라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 안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첫 번째 삶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야 한다는 것은 당위적은 가르침도 아니고, 종교적 차원에서의 교리도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것은 오늘 우리가 서 있는이’ 현재의 삶의 자리로부터 예수가 서 있었던저’ 과거의 삶의 자리에까지 대화를 주고받는 일종의 변증법적 과정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있는 질적이고도 양적인 거리에 대하여 아주 솔직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가지고자 한다면, 질문하고 관찰하고 연구하고 또 탐구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이성적 노력을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두 번째 삶은 우리 자신의 삶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많은 종교들은 피안의 삶으로부터 차안의 삶의 괴리를 전제 하고, 차안의 삶을 상대화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들의 유일한 목적은 소위 육적인 삶을 버리고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며, 죽음 이후에 있을 내세에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자세는 비단 몇몇 타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안에서도 과거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신앙의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바로 그런 착각이 하나의 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세상을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으며, 예수님은 스스로 죄인과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인간의 육의 삶을 긍정하시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자고로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엄격한 이분법적 분리를 주장하는 모든 종교적 시도들은 헬라의 이원론적 세계관으로부터 출발한 사변적 철학의 도움을 받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극단적 신앙의 삶에 대하여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피안이 아닌 차안에 더욱 집착하는 것입니다. 소위 현세 중심적 기복주의 형태를 가진 이러한 신앙의 형태도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복음과 일치한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이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신앙을 자신의 삶을 강화하기 위한 탁월한 수단 정도로 생각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한다든지, 성경을 필사를 한다든지, 이와 비슷한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들로 그들은 더욱 더 열심히 종교적 삶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근본적인 동기는 순수한 신앙심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들은 단지 종교와 믿음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자신의 삶이 보장받거나 그들이 원하는 어떤 기대들을 이루고 싶을 뿐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두 가지 형태는 서로 전혀 다른 내용 - 즉 하나는 피안에 집착하고, 하나는 차안에 집착하고 - 이지만, 결국에 그 둘은 모두 한쪽으로 치우친 극단적인 신앙이라는 점에서 같습니다. 복음 안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모든 형태의 극단을 지양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차안을 떠나 피안의 세계로 도피하라고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성경은 우리에게 초월적인 피안의 도움을 통해서 차안의 세계를 강화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일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복음 안에서 어떻게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원리로 돌아갑시다. 원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어떤 삶을 사셨는지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생명을 바라보면서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곧 예수님은 마치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평선을 바라보듯 피안의 세계를 바라봄과 동시에 더욱 차안의 세계에 직면하여 살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가 가는 길은 실패의 길, 죽음의 길, 죄의 길 곧 십자가의 길이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안에서 인류를 구원할 승리를, 죽음을 집어 삼킬 생명을, 죄를 심판할 의를 바라보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역사라는 긴 지평 위에서 오늘 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은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여전히 고통 위에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이 고통을 피하기 위하여 그것을 외면하라는 종교의 유혹을 받기도 하고, 그러한 고통을 극복하라는 의지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삶은 그러한 삶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복음 안에 있는 참 된 생명의 능력으로 오늘이라는 이 땅의 연약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삶의 태도입니다.

복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세 번째 삶의 자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현실의 죄와 악에 맞서서 사는 것을 뜻합니다. 복음이 우리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것의 의미는 죄와 악의 현실을 무비판적으로 긍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도 발견하는 바이거니와 복음은 단 한 번도 악과 타협하거나 생명 아닌 일에 동조한 일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철저히 그러한 일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라는 현실 속에 여전히 죄와 악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때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악과 죄의 경험은 너무나도 조직적이고 강력한 것이어서 우리 개개인의 힘으로는 도무지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삶의 경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괴리와 모순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에게 이러한 괴리와 모순을 극복할 한 가지 삶을 제시합니다. 죄와 악이 아무리 강력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과 타협하지 말고 그것에 동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그러한 현실의 부조리를 새롭게 변혁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로 확산되고 나아가서는 세계의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대됩니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다시 오심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완성되고 이 땅의 모든 죄와 악이 심판을 받으며 또한 그리스도 안의 모든 연약한 것들이 회복될 것을 믿는다면, 그러한 미래의 소망은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실천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곧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이 땅을 새롭게 변혁해 나가는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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