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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공과12(150329)

2015.03.18 12:50

서승철 조회 수:124

12: 예수님이 기도하셨어요

 

성서본문: 마태복음 27:27-56

공과주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어요.

 

1. 교사들을 위한 본문 안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를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유대의 종교적 관점, 둘째는 로마의 정치적 관점, 셋째는 기독교의 복음의 관점입니다.

** 유대의 종교적 관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가장 실질적인 이유는 유대교와의 마찰 때분입니다. 예수님을 빌라도의 재판에 회부한 것도 유대인들이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른 것도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 특히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이토록 예수님을 미워한 까닭은 예수님의 그들이 지켜온 종교 질서와 전통을 무시하고 깨뜨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두 가지인데, 유대교의 내용적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율법과 외형적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안식일에 병든 자를 치료하면서 안식일 법을 무시하거나 또는 세리나 죄인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정결법을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공생애의 마지막 시간이 되었을 때, 예수님은 급기야 성전에 들어가서 물건 파는 상을 뒤집어 엎고 상인들을 내 쫓는 소동을 벌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성전이 완전히 무너져 버릴 것이라는 예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유대교가, 특별히 율법과 성전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는 축복과 의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이런 행동들은 위협적인 것이었습니다. 두 가지 상반되는 질서가 공존할 수는 없었습니다.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 했습니다. 결국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성전에서 일어난 소동과 논쟁 이후에 예수님을 죽이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명절과 밤중에는 열리지 않는 공회를 긴급 소집하고, 불법적인 재판을 열어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온갖 거짓 증인들이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동원되었고 조롱과 모욕이 뒤따랐습니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신성모독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이런 자는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떠들었습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 스스로를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을 죽을 죄라고 여긴 것입니다.

** 로마의 정치적 관점: 유대의 공적 재판인 산헤드린 공의회는 예수님을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죽일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데려다가 너희의 법대로 재판하라라고 말했을 때, 그들이 한 말, , “우리에게는 사람 죽일 권한이 없나이다( 18:31)”라는 것은 사실 핑계고 거짓이었습니다. 때로 산헤드린 공회는 종교적 이유때문에 사형을 집행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예수님을 자기의 손으로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로마의 손을 통해서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때문입니다. 첫째, 그들이 자기 손으로 예수님을 죽이기에는 다른 유대인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아니어도 적어도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고 여져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로마의 손을 힘입어 죽이게 되면 예수님의 사역을 더욱 수치스럽게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십자가 형은 로마에 반란을 꾀한 사람에게만 주는 공개처형제도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자신이 그 동안 해오던 하나님 나라 운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라는 인물은 이제 한낱 실패한 정치혁명가 정도로 기억될 것이었습니다.

물론, 빌라도는 예수님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의 미움 때문에 넘겨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가는 자칫 민란이 날 수도 있을 정도로 상황이 과격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빌라도는 강도 바라바는 놓아주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내어주었습니다.

** 기독교의 복음의 관점: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종교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빌라도는 로마의 정치적 평화를 위해서 예수님을 죽였지만, 정작 예수님 자신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지기 위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가 당한 수치와 고통과 소외와 죽음은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들이 받아야 할 심판,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지한 제자들처럼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런 우리들을 위해서 홀로 죽음의 심판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죽음은 우리들에게 복음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의 저주이고 로마인들에게 정치적 수치였지만, 복음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제 죄로부터 자유해지고 죽음으로부터 행방되게 되었습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 더 이상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생명만이 있습니다.

 

 

2. 본문의 교훈

**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위한 죽음이다: 예수님은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가 친히 대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나는 이처럼 귀한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나에게 사랑을 받을 만한 어떤 조건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똑똑하고 착하고 뭔가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바로 그 때에, 나와 상의하지 않고 그의 뜻대로 나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 안에 거하게 됩니다.

**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에서 자유해졌습니다. 그가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던 죄의 벽이 이제는 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올 수 없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 우리에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에겐 선함의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고, 우리는 여전히 죄의 유혹때문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연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와 상관 없이 살았던 옛 습관처럼 죄를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는데 어찌 우리가 죄 가운데에서 살기를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죄를 멀리하고 의를 기뻐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이 주어졌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해방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심겨졌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을 모르는 사람들, 곧 이 생명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땅의 삶에 더욱 집착합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남들보다 더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것이 마치 자기의 생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을 잃으면 마치 죽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이러한 세상적인 집착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생명의 신비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4:7-10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고린도후서 6:8-10에서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음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