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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공과16(150503)

2015.04.29 17:51

서승철 조회 수:107

2-8: 성령의 열매

 

v  성서본문: 갈라디아서 5:16-26, 요한복음 15:1-8

v  공과주제: 육체의 욕망을 버리고 성령을 따라 살아라


Q.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17에서 우리에게 서로 다른 두 가지 종류의 욕망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각각 어떤 욕구입니까?

à 육체의 욕망과 성령의 욕망

 

욕망이란 우리로 하여금 어떤 특정 행동을 하도록 강하게 충동하는 내적동기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말하는 육체의 욕망과 성령의 욕망은 기본적으로 서로 아주 상반대는 방향성을 가진 욕망입니다.

먼저 바울이 말하는 육체의 욕망이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지향하는 죄에 대한 보편적 욕구를 일컫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육체의 욕구, 즉 생물학적 본성, 이를테면 배고 플때 먹고 싶다든지 피곤할 때 쉬고 싶다든지 혹은 때때로 노폐물을 배출하고 싶어하는 종류의 자연스러운 몸의 욕구들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육체의 욕망이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본래적으로 부여하신 창조의 형상을 거스르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오히려 비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반면, 성령의 욕망은 이러한 육체의 욕망에 저항하는 아주 강력하고도 이질적인 느낌의 욕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하나님 지향의 욕망입니다. 하나님 지향의 욕망, 즉 성령의 욕망은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는 내적 창조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욕망은 한편으로는 죄와 악을 거부하는 소극적 저항으로서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의와 선을 실천하는 적극적 운동으로 나타납니다.



Q. 바울이 말하는 육체의 욕망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5:19-21)

à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 그리고 그와 같은 것들

 

바울도 말했듯이 육체의 소욕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것, 죄를 사랑하고 지향하는 것, 악을 모방하고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다 육체의 소욕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아주 단호하게 경고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말입니다.

 

 

Q. 바울은 성령의 욕구를 따르는 일들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다고 말합니까? (갈라디아서 5:22-23)

à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성령의 욕구를 따라 나타나는 일들에도 딱 정해진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며 선과 의를 추구하는 삶의 모든 내용들이 다 성령을 따라 나타나는 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삶에는9가지의 대표적인 결실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Q. 성경은 우리 안에서 육체의 욕구와 성령의 욕구가 서로 충돌할 때 어느 것을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까? (갈라디아서 5:16, 25)

à 성령을 따라 행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우리들은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들은 완전하지 못하고 때때로 죄의 유혹에 시달리곤 합니다. 곧 우리 안에서 영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육체의 욕망이 강하게 나를 충동질하여 죄의 길로 가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성령께서 나를 강하게 충동질하여 죄의 길에서 떠나 의의 길로 가라가 명령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소위 영적인 긴장상태 위에 놓여 있습니다.

로마서 7 21-24을 보면, 이러한 우리들은 긴장 속에 놓여 있는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사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 위대한 사도 바울도 이처럼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사이에서 갈등하였다는 사실이 새삼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영적인 갈등과 긴장상태를 늘 경험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안에서 두 가지 욕망이 서로 충동하는 것을 발견할 때, 어느 것을 따르기로 결정하느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말고 성령의 소욕을 따르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욕망때문에 하나님과 분리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거하는 터전이 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v  과의 교훈: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 그리스도인의 성품

바울이 특별히 성령의 열매를 특별히 아홉 가지로 제시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의 욕망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주 구체적인 삶으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열매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열매를 생각해 보십시오. 열매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좋은 열매가 맺히기까지는 아주 많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합니다. 때로 그 시간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길어지기도 합니다. 때로 그 과정은 우리의 생각보다 힘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 없이 열매는 맺히지 않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라는 성경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우리가 변화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물론 성령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충동하고 인도하시지만 결국 우리의 선택과 의지 없이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연약해서 쉽게 유혹에 넘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에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마침내 맺힐때까지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이로써 마침내 우리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9가지 열매는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행동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외면적인 변화이기보다, 마치 잘 발효된 음식처럼 안에서부터 질적으로 새롭게 달라지는 변화입니다. 곧 성품 자체의 변화입니다. 처음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처음에는 기뻐할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처음에는 오래 참을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처음에는 자비가 없었는데, 처음에는 선행을 행하길 싫어했는데, 처음에는 진실한 충성이 없었는데, 처음에는 온유하지 못했고 또 처음에는 절제하지 못했는데, …,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따라 행하고, 행하고, 행하고 또 행하다보니 나중에는 그냥 겉만 아니라 속까지 새롭게 변화된 것처럼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숙련된 상태를 가리켜서 성품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