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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공과20(150606)

2015.05.29 13:21

서승철 조회 수:110

새싹공과 20: 모든 사람에게 전해요

 

v 성서구절: 사도행전 10:30-48

v 공과주제: 하나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어요.

 

1. 본문안내

사도행전은 크게 두 개의 이야기로 나누어집니다. 1장에서 12장까지는 베드로의 이야기 그리고 13-28장까지는 바울의 이야기. 아마 모두 잘 알고 있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는 보다 중요한 이야기의 원리가 하나 있습니다. 키는 사도행전 1:8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나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 한 구절이 바로 사도행전 전체를 여는 단 하나의 키, 단 하나의 주제 그리고 전체를 하나로 엮어내는 핵심입니다. 곧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땅에, 온 세계에 전파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해보면,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 자체가 바로 이 사실을 이미 예고 하고 있습니다. 온순절 날, 성령이 교회 위에 임하자 성도들이 세계 각지의 말로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의 영이 임하자 세계는 그 안에서 모든 경계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이 땅 끝까지 실제로 전파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현실 속에는 복음이 극복해야 할 수많은 장벽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종의 장벽, 종교의 장벽, 문화의 장벽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값없는 구원을 이미 경험한 사도들과 예루살렘의 성도들 조차도 그런 한계들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유대교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새로운 공동체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큰 틀에서의 유대교의 관습과 문화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유대를 넘어 이방인들의 땅에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전혀 상상할수가 없었습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전체로 확대되는 것은 그나마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습니다.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적이 나타나고 교회의 나눔과 섬김의 새로운 삶의 모습은 많은 유대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심지어 제사장과 같은 유대교의 지도자들조차도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 사회를 너머서 사마리아까지 나아가는 것은 조금 어려움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적어도 5-600년의 역사적 간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 사회와 사마리아 사회는 그 오랜 시간 동안 서로 교류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유대 사회는 철저히 사마리아인들을 경멸하였왔습니다. 둘 사이에는 어떤 타협이나 공유가 불가능해보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뜻밖의 계기를 통해서 사마리아에도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말미암아 일어난 박해 때에 집사 빌립이 사마리아에도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고난이 선교의 계기가 된 것입니다. 헬라인 출신이었던 집사 빌립은 비교적 유대 사회의 문화적, 종교적 전통에서 자유로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파견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들이  도착해서 세례를 베풀자 하나님의 성령이 사마리아 사람들 위에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 일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곧 그들에게 구원이 임했다는 것, 생명이 임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사도행전 9 31절에는 이렇게 일단락됩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사마리아까지는 어떻게든 오게 되었지만 이스라엘 경계 밖으로 나아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복음이 이방인에게 간다는 것, 구원과 생명이 이방인에게,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일을 계획하고 준비하실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곧 장 이방으로 넘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교회는 스스로 납득할 만한 어떤 계기가 필요했고,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그런 경험을 제공하셨습니다. 직접 이방 지역으로 나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스라엘 안에 있는 이방인과 만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운 것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공과 본문인 사도행전 10장 전체의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는 로마의 백부장, 의인이라고 소개되고, 기도와 구제의 삶을 살았던 그를 만나게 되면서 복음에 대한 전혀 새로운 차원의 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시각에서 보자면 고넬료는 하나님의 구원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방인이고 그는 부정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설득하기 위해서 한 환상을 반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부정한 짐승을 보여주고 그것들을 잡아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율법의 기준을 가지고 있던 베드로는 자기에게 보인 짐승들이 모두 부정한 동물임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부정한 것과 접촉하지 않고 살았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정하게 한 것을 네가 부정하다고 말하지 말라.” 이 환상은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뜻을 잘 알지 못했지만 마침 고넬료에게서 온 사람들이 도착했고 베드로는 그들을 따라 고넬료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부정하다고 여기는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은 이미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을 외모, 즉 어떤 외적인 조건을 가지고 보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복음에는 그 어떤 제한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 위에 임하고 고넬료의 그의 식구들이 방언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이방인에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베드로는 이 경험을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보고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구원을 주셨다는 사실을 교회도 조금씩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하나님은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사도로 바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13장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2. 공과의 교훈

우리 모두는 여러 가지 한계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나의 지식, 경험, 문화, 종교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나와 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나와 다른 경험을 했거나 다른 문화 속에 살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만나면 금새 경계를 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현상은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조금 달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닮는 것이어야 하고,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인종이나 신분 또는 많이 가지고 적게 가기고에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를 차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만찬가지로 나와 다른 누군갇도 그만큼 사랑하신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위에서 하는 것입니다. 혹 누군가가 나와 다른 종교를 가지고 혹은 다른 믿음을 전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를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강압적인 방식이나 폭력적인 수단으로 우리의 믿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서는 안 되지만 반대로 그런 식으로 다가오는 다른 종교의 접근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사랑으로 모두를 대하되 우리의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