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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공과25(150712)

2015.07.08 15:43

서승철 조회 수:110

새싹공과 25: 감옥에서

 

·       성경본문: 창세기 39:7-23

·       공과주제: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Coram Deo), 사자성어 아닌 라틴어네요. 영어로는 “Before God”입니다. 삶의 모든 선택의 순간들을 지금 하나님께서 나의 곁에 있는 것처럼 여기고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삶의 선택의 기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공이 삶의 기준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때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서든 사회적으로 출세하고자 노력합니다. 돈이 기준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항상 부자들을 동경하고 자신도 그렇게 되고자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치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이런 세속적인 가치들 말고 보다 고상한 가치들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위 도덕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직을 최고의 기준으로 어떤 사람은 사랑을 최고의 기준으로 또 어떤 사람은 나눔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들과 기준들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한계일까요? 물론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상대적인 가치들을 기준으로 삼는 것 자체가 한계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가치든간에 따지고 보면 그 나름의 의미들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그걸 인정해 줄 필요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가치들과 기준들의 보다 본질적인 한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어떤 가치를 붙들든지 어떤 기준을 세우든지 가장 근본적인 약점은 그것을 가치와 기준으로 삼고 있는 자기에게 있습니다. 인간은 연약합니다. 쉽게 변하고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환경과 상황에 따라 크게 흔들립니다. 예를 들어 나는 정직하게 살아야지라는 기준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정직과 거리가 멀게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럴지라도 그들이 행복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조금의 양심의 가책을 느낄 뿐, 사회적으로도 오히려 출세하고 돈도 더 많이 벌었습니다. 그 사람은 흔들립니다. 정직을 버리고 자기도 같이 타협하고 싶어집니다. 어느새 자신이 세웠던 기준도 무너지고 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발견한 의는 우리 자신에게 있는 의가 아니라 우리 밖에 있는 의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의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될 때, 우리가 사람 앞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서게 될때, 우리에게 중요해지는 것은 내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는지가 아닙니다. 어떤 이득을 얻게 될지를 따지는 것도 덜 중요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기뻐하시는지 아닌지만이 중요해집니다. 때로 그러한 선택이 우리의 삶에 불리하게 작동할지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보여줄 실력입니다. 모두가 상황과 환경에따라 이리저리 요동할 때 늘 한결 같이 믿음을 지키는 요셉과 같은 모습이 바로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입니다.

 

요셉이 어떻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떨쳐낼 수 있었을까요?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끈질기게 이어지는 유혹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그러한 선택이 자기에게 억울하고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음에도 어떻게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요셉이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9절의 요셉의 말과 같이 그는 단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때문이 아니라 하나님때문입니다.

 

우리도 때로 살다보면 여러 가지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나만 빼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거나 또는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래도 될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람데오의 신앙은 이런 것들과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 또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그 하나님 앞에서 행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