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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1장

2021.01.16 11:16

소풍 조회 수:22

2021116()VKC 아침 묵상

본문사무엘하 11

찬송379

 

사무엘하 11장에는 다윗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유명한 다윗과 밧세바의 사건이 나옵니다. 10장에서 시리아-팔레스틴 지역의 패권 다툼에서 승리한 다윗은 이제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절대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라는 것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제국에서 정기적으로 해외 원정을 나가는 모습처럼 이스라엘도 정기적인 해외 원정을 나가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다윗의 왕권과 국력이 대내외적으로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1)고 말합니다. 다윗은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말만 해도 장군과 부하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정도로 체계가 잡혔습니다. 그렇다고 전쟁보다 더 급한 용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2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거 거닐고 있었습니다.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한 자만감 때문인지, 아니면 지난 밤 늦게까지 향락에 빠져있었기 때문인지, 다윗은 저녁(일몰 후)이 되어서야 잠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2) 걷잡을 수 없이 죄악의 길로 빠져들었습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שָׁלַח)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3)습니다. 1절에서도 이스라엘 군대를 전쟁으로 보냈는데 3절에도 전령을 보내서여인의 뒷조사를 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보낸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다윗이 명령 혹은 말 한마디로 세상을 통제하는 절대 권력자의 힘을 갖고 있음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1절에는 공적인 보냄이었지만 3절에는 사적인 욕망의 범죄를 준비하기 위한 보냄이었습니다. 어쨌든 전령의 보고에 의하면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이요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좀더 자세히 여인의 족보를 살펴보면 할아버지는 다윗의 전략가였던 아히도벨’(삼하15:12), 아버지는 30인의 용사 중 한사람(삼하23:34)이었던 엘리암/암미엘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밧세바는 기개가 높은 충신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니 보통 왕이라면 이런 보고를 듣고 엄두를 내지 못했을텐데, 다윗은 그 보고를 듣자마자 또다시 전령을 보내어”(4)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동침하였습니다. 최고 권력자인 다윗에게는 충신의 딸이든 전쟁 중인 용사의 아내라는 사실이 전혀 거리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실수가 아니라 권력자이기 때문에 충분히 할 수 있고, 해도 된다고 생각해서 저지른 고의적인 범죄입니다.

 

밧세바의 입장에서 보면 왕의 소환 명령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특히 4절에서 다윗이 보낸 전령은 한사람이 아니라 여러명(복수형)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거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끌려간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4절을 자세히 보면 밧세바가 다윗과 더불어 동침”(4)하였다는 본문은 “she came(וַתָּב֤וֹא) to him(אֵלָיו֙) and he lay(וַיִּשְׁכַּ֣ב) with her(עִמָּ֔הּ)”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만 보면 밧세바가 수동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만 기록하지 않습니다. 5절을 보면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남편이 있는 부인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면 아마도 은밀하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밧세바는 사람을 보내”(שָׁלַח)서 다윗에게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렸습니다. 이로 인해 밧세바의 임신 소식은 궁궐에 있는 사람들에게 금방 소문이 났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뱃속에 있는 아기는 다윗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밧세바가 오히려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는’(새로운 권력) 위치에 있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다윗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절 이하를 보면 전쟁 중인 요압에게 기별을 보내서 우리아를 소환하게 하였습니다. 갑작스럽게 소환을 받은 우리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그 이유를 궁금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궁궐 안에 파다하게 퍼진 밧세바와 다윗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아는 왕의 음식물(8)과 함께 부여받은 왕의 두가지 명령(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에 대해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궁궐을 나온 후에 9,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고 말합니다.

 

다윗의 기대와 달리 우리아가 집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려던 첫 번째 계획은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우리아를 불러서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10)라고 물었습니다. 병사가 지난 밤에 집에서 잤는지 아닌지를 묻는 것은 지나친 간섭처럼 보이는데, 어쨌든 이 질문에 대해 우리아는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11)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대답을 듣고 다윗이 뜨끔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암몬과 전쟁을 하는 중인데 자기만 한가하게 집에 들어가서 쉴 수 없다는 것은 다윗의 행동을 빗대어서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야는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11)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왕의 명령을 단호하게 거부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다윗의 계획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우리아로 하여금 먹고 마시고 취하게”(13) 하였지만 이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14) 보냈고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15) 그런데 실제로는 다윗의 편지(명령)에 나와 있는대로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요압에게 우리아만 남겨두고 나머지 병사들은 후퇴해서 우리아만 죽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요압은 성을 봉쇄하는 최전방에 우리아를 보내서 국지전의 상황에서 다른 병사들과 함께 우리아가 죽게 하였습니다.(17) 이것은 앞에서 다윗은 절대 권력자가 되어 명령하고, 보내는 사람이었지만 점점 그 명령()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요압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아를 혼자 적진으로 보내는 것은 부하를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라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였고, 전쟁터에서 이런 명령을 내리면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자신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압은 다윗의 명령()에서 우리아를 죽이라는 큰 명령은 따랐지만 자신에게 피해가 되는 부분은 일부분 수정해서 따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우리아는 죽었고, 전령의 보고를 들은 다윗은 요압에게 이렇게 말하도록 했습니다. 25,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이 일로 걱정하라 말라를 원문에서 직역하면 이 일이 네 눈에 악하지 않도록 하라입니다. 이 일이 악한 일이 아니니까 너무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다윗이나 요압이 아니라 아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소름끼칠 정도로 간교하고 악한 다윗의 모습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다윗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결코 완전히 신뢰할만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다윗 스스로는 악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아직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았을 뿐이고, 27,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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