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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샘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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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7, 2013(신현철 목사)

2013.07.11 11:29

소풍 조회 수:970

2013 7 7(주일)VKC 성령강림절 (7)주일 예배

【본문】눅 10:1~20, 6:9~10

【제목】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Let us not become weary in doing good.)

1.

이종동 집사님께서 주일 마다 저에게 times colonist 신문을 가져다 주십니다. 아마도 영어 공부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놓치지 말라는 충고라고 생각하며 매주 감사히 받고 있는데....

Every week, Church member Lee Jong dong gives me a copy of the Times Colonist. I thankfully take the copy for my English studies and to be aware of the news.

전에 주신 신문에 이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PCS 10학년에 다니는 16살짜리 Xavier라는 학생의 이야기인데, 안타깝게도 밴쿠버에서 시애틀까지 자전거로 달리는 cancer fundraising event 참여하다가 트럭에 치여 죽은 사건이었습니다.

 Few weeks ago, there was a news print about such story. A grade 10 PCS student, Xavier (16), was hit by a truck while cycling at a cancer fundraising event.

얼마 전에 한국 뉴스에서 내용인데, 캄보디아 북부에서 선교지로 이사하던 선교사 가족이 마주 오던 관광버스가 중앙선을 침범하는 바람에 방효원 선교사, 부인 김윤숙 선교사, 둘째 아들과 셋째 딸이 현장에서 세상을 떠났고, 첫째 딸과 막내 딸만 살아서 한국으로 귀국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안타까웠던 것은 살아남은 아이들이 아직 부모님과 가족들의 사망 소식을 알지 못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A different news from a Korean news site reported that there was a tragedy where a missionary’s family all passed away (Bang Hyo-won missionary, Kim Yoon-suk missionary, one son, and a daughter) but two (first daughter and youngest daughter) from a collision with an incoming bus whilst immigrating to their new mission field in Cambodia.

이런 기사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합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지... 좋은 일을 하려고 cancer fundraising event 참가한 어린 친구에게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기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교사로 헌신하고 캄보디아에서 이제 사역을 시작하려는 순간에 교통사고가 생기게 되었는지...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 계신다면 이런 일이 생기려다가도 막아주셔야 할텐데..

 Every time I see such article, I get confused. Why would such accidents occur… A young student was only trying to raise money for a cancer fundraising event, and it was a missionary who was just about to start a new mission but an accident occurred… If God really existed, then He should have stopped these accidents..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런 경험을 적이 있습니까? 아마 제가 예로 경우처럼 극단적이지는 않겠지만, 저마다 비슷한 경험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려고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거나, 아니면 오히려 오해를 받아서 마음이 괴로웠던 경우...

How about you? Have you ever undergone such incident? I think most would have not had to face such extreme cases as described before, but I am sure many would have faced similar situations. When one tries to do something nice, the outcome may not be great or the event may have caused for the recipient to have misunderstandings causing troubles between you and that person…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도 이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낙심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좋은 하려고 하는데 낙심되는 일이 생기는지,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A similar story is recorded in the scripture from today. In other words, when one tries to do something good that does not necessarily mean that there will be good results, sometimes disappointment follows. Thus, when we contemplate the scripture today, I hope to go through the reason behind the disappointment that sometimes follows after these good events and what we should do when we do get disappointed.

2.

우선 누가복음 말씀을 생각해 보면, 1절에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동네와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After this the Lord appointed seventy-two others and sent them two by two ahead of him to every town and place where he was about to go (Luke 10:1)

우리는 보통 12제자만 있는 아는데, 사실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70명의 전도자를 2명씩 파송하였는데, 이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3절에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We normally think there are 12 disciples but in fact there were many more disciples who had followed Jesus. So Jesus paired up the 70 disciples and said, “Go! I am sending you out like lambs among wolves.” (Luke 10:3)

처음에 말씀을 묵상할 때는, 그냥 이리들이 득실거리는 악한 세상으로 제자들을 보내신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묵상하는데, 제자들을 이리보다 강하게 만드셔서 파송하면 될텐데, 어린양처럼 약한 모습으로 보내셨을까? 같으면 이리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라면 사자같은 맹수로 만들어서 보냈을거 같은데... 그리고 만약 제자들이 어린 양처럼 약한 상태였다면 숫자라도 묶어서 함께 보내면 좋았을텐데, 둘씩만 보내셨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First, I thought Jesus had meant that he was sending the disciples to a world full of evils. But then I became curious. Why didn’t Jesus then try to train the disciples to be stronger before sending them out to such a place? If there were wolves out there, I would try to make the disciples be more like lions, not lambs. And, why did Jesus make the disciples pair up if they were in such a weak state? Why did he not just group them altogether as a herd?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여기에 아주 중요한 원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보내시는 원리가 담겨 있기 때문인데...

But after thinking about the passage for a bit, I realized there was a very important fundamental here. The principle is that Jesus sends people to change this world.

우선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사람들은 어린양과 같아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한데, 우리는 보통 교회와 성도들이 힘이 있어야 복음을 전하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힘과 능력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나운 이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리들 틈으로 들어가는 힘없는 어린양이 되어야 사실입니다. 집단의 힘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0명을 한꺼번에 보내지 않고 2명씩 쪼개서 보내신 것입니다.(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 같은 이단들이 전도하러 2명씩 보내는 이유가 여기서부터 시작했는데...)

First, it is important to realize that the people whom Jesus sends are like lambs. We tend to think that the church and we need to have power to evangelize. That is why we sometimes pray for strength and ability. But if we want to evangelize, we actually should become the weak labs among the wolves, instead of becoming aggressive wolves like the others. We also should not evangelize as a group and force others using collective behaviour. This is why Jesus paired up the disciples and sent each pair to evangelize.

결국 우리가 선한 일을 하다가 실망하는 가장 번째 이유는, 우리가 양의 모습으로 일을 감당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인데... 물량과 집단의 힘으로 사람을 강제적으로 변화시키려 하니까...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사람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니 선한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실망하고,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We sometimes get disappointed when we do good deeds… This happens when we don’t take the appearance of a lamb when trying to manage the responsibility of a disciple … We try to force others to change by using groups and collective behaviours. When we do this, things don’t happen as we want and we become disappointed even though we were doing something good.

전에도 한번 말씀드렸지만, 제가 대학을 마치고 신학대학원을 다니다가 군대를 갔으니까 당연히 군종으로 빠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전방 철책선 부대로 배치를 받고 후에 한동안 마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런 곳으로 보내실 리가 없는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데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철책선에서 이등병으로 지냈던 때만큼 신앙 생활을 재미있게 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가장 낮은 이등병이었으니까 힘이 있기는커녕, 있는 고참들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철책선의 특성상 교회를 없고,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 자체적인 예배를 드려야 하니, 자발적인 마음이 아니면 누구도 예배를 드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등병이 주관하는 예배에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참석한 사람들이 처음에는 불과 되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거의 소대원들이 다함께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암튼, 군생활을 통해 이리같은 고참들 속에서 힘없는 이등병으로 같이 뒹굴고, 같이 생활하면서 복음을 함께 나눌 ,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I mentioned this to you before but after graduating from college, I went to a graduate school of theology and at some point during that time, I went to serve in the Korean army. I was deployed in the forefront of the ceasefire line and struggled during my training. I had thought something was wrong because I thought God would never have sent me here. But then as I look back, my religious life had never been fun and interesting as life back then, when I had been a soldier placed in the forefront of the truce line. There, my position level was the lowest there so I had to try hard not to upset the seniors. And at the ceasefire line, soldiers were not allowed to go to churches (unless for very special reasons) and so we had to use our sleeping time to worship the Lord. Initially, the number of soldiers who used their sleeping time to worship was very small. However, as time went on, more people began to attend the service and later it got to almost all soldiers attending the worship service. Through the period of time when I was a weak low-position soldier at the army, I had spent time with the veterans and I discovered that I was able to change their hearts.

그래서 우리가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는 마음이 , 가장 먼저 생각해 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입니다. 내가 혹시 어린 양의 모습인지, 아니면 이리의 모습인지... 힘과 물질로 뜻대로 해보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진실한 섬김과 복종으로 하려고 했던 것인지....

Whenever we are disappointed while doing something good for the Lord, we first need think about what we look like to others. Do we have a face of a lamb or of a wolf? Are we trying to change others by using force and material things or by truly serving and worshipping God?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총과 칼을 권력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다 말했던 테레사 수녀님처럼, 허리를 굽히면 굽힐수록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님의 얼굴을 제대로 있었노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이 변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Let’s look back in history. What kinds of people were those who had touched the hearts of others and had changed them? Just as Mother Teresa had said “Those who are humble and bend down to others have no time to look up,” the world is changing as people are confessing that the lower they stoop down, they are able to see the face of Jesus.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이 번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심각한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방하는데도 그는 자기의 처지를 변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자가 플라톤에게 물어보았다. 선생님! 변명을 하십니까?’ 그때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그들의 비난을 종결시키는 것은 나의 변명이 아니다. 그들의 비난을 침묵시킬 있는 유일한 길은 나의 올바른 행위뿐이다.’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플라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Famous philosopher Plato was once placed in a situation of misunderstanding from people around him. Even though many people criticized him, Plato did not try to explain his situation. So one day, his disciple asked him, “Teacher! Why do you not explain your situation to the people?” Plato replied, “Stopping their criticisms is not my way of excuse. The only way to silence their criticisms is through right actions.” Plato knew very well that changing people’s hearts should not be done simply through words.

 

b3.

   다음에 생각해 것은, 7절인데요,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집에서 집으로 옮기지 말라’(Stay in that house, eating and drinking whatever they give you, for the worker deserves his wages. Do not move around from house to house)라고 말하고 있고, 8절에서도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When you enter a town and are welcomed, eat what is set before you.)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The next thing for us to think about is in verse 7, “Stay in that house, eating and drinking whatever they give you, for the worker deserves his wages. Do not move around from house to house” and in verse 8 it says, “When you enter a town and are welcomed, eat what is set before you.”

 

말씀만큼 오해를 많이 받는 말씀도 없는데... 어떤 분들은 말씀을 복음 전도자, 목사와 선교사를 대접해야 하라는 말씀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I don’t think there is another verse in the bible, as misunderstood as these ones as most people tend to interpret it as ‘obey your pastors.’

 

그런데 여기서 강조점은 주는 것을 먹으라 차려 놓은 것을 먹으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려고 하지 말고, 주는대로 먹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마을에 들어 갔는데, 먹는 문제로 왔다 갔다 하면 되겠냐는 것입니다.

 

However, the verse is telling them to eat what they were given over what they want and that they should not move from house to house just because of the food that is being served.

 

처음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했을 , 더운 여름날 집에서 손수 삼계탕을 끓여주셨는데, 그것을 먹으면서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점점 감격이 식어갔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목사먹사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는데...

 

When I first began as the youth pastor, I was invited over to a house. There, she served me with a homemade Sam-Gye-Tang (Ginseng chicken soup) on a very hot summer day. I was touched and I also questioned whether I deserved such treatment. However, as time went on, I began to feel less and less and eating such foods almost became a routine. This perhaps is why in Korea priest are called pig-ests.

 

암튼, 우리가 선한 일을 하다가 실망하게 되냐면, 점차 나은 대접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감격과 감사가 사라져버리고, 오히려 불평과 원망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실망감이 밀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Similarly, the reason why people become disappointed while doing good deeds is because they start expecting more from those on the receiving end. Thus, they begin to forget why they began and dissatisfaction, frustration and resentment fill their minds.

 

남미의 멕시코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다고 하는데, 한쪽에는 부글부글 끊는 온천이 땅에서 솟아 오르고, 옆에는 얼음물과 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 헹구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모습을 외국 관광객이 안내하던 멕시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좋겠습니다.’, ‘왜요?’, ‘이렇게 찬물과 더운물울 마음대로 있으니까요. 이곳 사람들에게는 온천과 냉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군요?’ 그랬더니 멕시코 안내원의 대답이 천만에요. 오히려 이곳 아낙네들은 감사하기보다는 불평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비누가 나오지 않는다고...’

 

A tale is told about a small village in Mexico where a hot spring is located right next to the cold one. As a result, the wives would all gather with their laundry, wash it in the hot water; rinse it in the cold water then go back home. One day, a tourist passing by the area commented to a local, “These people must be so happy. They can use both hot and cold water whenever they want to.” The local person then responded, “No actually, they complain day after day saying that they also want soap to be provided.”

 

우리가 어쩌면 이런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전도자들을 보내면서 주는 대로 먹으라, 일꾼이 삯을 받는 것처럼 무조건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어지는 댓가와 사람들의 반응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Upon hearing this story, I thought that maybe this was our approach to life. And thus, when Jesus sent the apostles out, he told them to eat and drink whatever was given and be as grateful as a worker receiving his wage and to not expect anything in return and fret about others’ reactions.

 

k.

이번에는 반대로, 조금 전에는 제대로 대접을 하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낙심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아예 대접은커녕 복음 아예 받아들지 않고 거부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실망이 클텐데....

 

10, 11절을 보면,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줄을 알라 하라’(But when you enter a town and are not welcomed, go into its streets and say, 'Even the dust of your town that sticks to our feet we wipe off against you. Yet be sure of this: The kingdom of God is near)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발로 차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 누구나 실망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요나처럼 어디 두고 보자는 마음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음에 12절에서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날에 소돔이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I tell you, it will be more bearable on that day for Sodom than for that town)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저주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같은 사람들을 소돔처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을 소돔 사람처럼 생각하라는 말씀은, 창세기 18 25절을 보면 소돔성의 멸망을 앞두고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있는데,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Far be it from you to do such a thing--to kill the righteous with the wicked, treating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alike. Far be it from you! Will not the Judge of all the earth do right)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끈질기게, 만일 소돔성에 의인이 50명만 있으면, 45, 40, 30, 20, 마지막으로 10명만 있으면 구원해 주시겠느냐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소돔성에는 의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멸망하고 말았는데....

 

다시 말해서 복음을 열심히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실망하고 낙심하고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소돔을 위해 중보기도 했던 아브라함처럼 안타까워하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부흥회에서 했던 설교 중에, 교회에서 가장 어려움의 원인이 성도들은섭섭 마귀때문이고, 목회자들은괘씸 마귀때문이라고 하시는 것이었는데.... ‘섭섭 마귀 자신이 이상 사랑이나 돌봄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섭섭한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이고, ‘괘씸 마귀 그만큼 사랑을 받았으면 이제 알아서 해야 할텐데, 뻔히 눈에 보이는 일들조차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괘씸한 생각이 들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섭섭 마귀괘씸 마귀 공격을 받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정도 했으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야 할텐데, 하필 캐나다에 와서 목회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유학생 바람이 사그러들기 시작해서, 이제는 유학생 부모님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셨고, 미국 달러와의 환율 차이 때문에 캐나다보다는 미국을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설교하고 말씀 공부를 해도 변화가 없는 모습을 보면서 불편한 마음이 들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소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아브라함이 품었던 마음을 아느냐고... 썩어져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아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Before, people were disappointed from not being received properly, but in this case, people outright reject the gospel, let alone receive it; this would lead to a greater disappointment.

 

In verses 10 and 11, it states, “But when you enter a town and are not welcomed, go into its streets and say, ‘Even the dust of your town that sticks to our feet we wipe off against you. Yet be sure of this: The kingdom of God is near.’” 

Some people even throw away and reject the gospel; everyone would be greatly disappointed as a result. Thus, Jonah’s “just wait and see” attitude is justified. 

However, Jesus goes on to say, “I tell you, it will be more bearable on that day for Sodom than for that town.” These words do not instruct us to curse those who do not accept the gospel. On the contrary, His words tell us to think of those people like the Sodomites. Thinking of those who refuse the gospel as the people of Sodom is best described by Abraham’s actions towards the destruction of Sodom in Genesis 18:25: “Far be it from you to do such a thing – to kill the righteous with the wicked, treating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alike. Far be it from you! Will not the Judge of all the earth do right.” Abraham asks if God will rescue Sodom if there are 50, 45, 40, 30, 20, or even 10 righteous people. Unfortunately, no righteous people lived in Sodom, so it perished.

In other words, when people do not accept the gospel despite hard efforts, do not be disappointed or curse them, but rather mourn for them like Abraham did, praying for the Sodomites.

In the sermon from a pastor in a revival, he stated that the cause of a church’s biggest challenges for the congregation is the “Upset Devil” and for pastors is the “Ungrateful Devil”. The “Upset Devil” causes one to feel upset when one believes that he cannot receive more love or care, and the “Ungrateful Devil” causes one to think of other people as ungrateful when they should be self-initiative after all the love they have received, but are rather lazy and not performing their daily duties. 

In fact, we are often attacked by the “Upset Devil” and the “Ungrateful Devil.” I also have thoughts like these: ‘If I did this much, God should support me with His strength. The rate of students coming to Canada to study has greatly decreased. Now, most of the students’ parents have gone back to Korea, and due to the difference in currency exchange rates to those of the US dollar, the United States have become a more ideal place to study in. Consequentially, I was disappointed with God. Also, I sometimes feel uncomfortable when I do not notice a difference even after diligently preaching and studying the Word.

God says to us, “Do you know how Abraham felt looking upon the Sodomites?” He is asking us if we know how Jesus Christ felt looking upon the deteriorating world.

5.

마지막으로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하다가 실망하는 이유를 17절에서 찾아볼 있는데,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The seventy-two returned with joy and said, "Lord, even the demons submit to us in your name)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흩어졌던 전도자들이 다시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가장 감격적인 내용은 귀신들이 항복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여기서 귀신들이 항복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귀신들은 이상 하나님의 뜻에 저항할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굴복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신들이 항복하는 모습을 직접 체험했으니 얼마나 놀랍고 감격적인 순간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이와같은 보고를 전해 들은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However, do not rejoice that the spirits submit to you, but rejoice that your names are written in heaven.)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셨을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선한 일을 행할 , 그때마다 귀신이 항복하는 모습을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복음을 전할 이렇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반대로, 귀신들이 항복하기는커녕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들의 오해를 받기도 하고, 거부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칫 반응이 좋지 않거나, 특별한 역사를 기대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실망하고 낙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가장 기뻐해야 하는 것은 귀신들이 항복하기 때문이 아니라, 보다 궁극적인 이유,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께 기억된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쁨의 이유를 가장 본질적인 일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To say one more lastly, the reason we become disappointed while performing good deeds can be seen in verse 17: "The seventy-two returned with joy and said, "Lord, even the demons submit to us in your name"

The most touching content when the missionaries return to report was the "submission of demons". This means that the demons surrendered to God's will; in other words, the demons realized that they cannot go against God's words but only can obey.

Jesus, who had heard the exact report, said "However, do not rejoice that the spirits submit to you, but rejoice that your names are written in heaven" -why would he say such thing?

It is because not every time we preach the gospel and perform good deeds, the demons are going to submit. Sometimes, people might misunderstand and reject.

Hence, when the reactions aren't very good, or if one was expecting something spectacular, one might become disappointed. This is why Jesus said the most thing we should take for granted is not the "submission of demons" but the fact that God will remember our names; it means to find the reason of joy in the most fundamental way.

6.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경우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자신이 어린양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종의 마음으로 일하지 않고 댓가를 바라기 때문에, 때로는 무감각한 사람들의 모습 때문에 낙심하고, 낙심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하다가도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때가 많이 있습니다.

 I will now conclude my message. We have reflected together about the discouragement we may receive from doing a good deed. We are not like Jesus, we tend to look to compensation rather than work like slaves. Sometimes we see apathetic people and have a high chance of discouragement. Thus, while doing a good deed we want to give up. 

그런데 갈라디아서 6 9절을 보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Let us not become weary in doing good, for at the proper time we will reap a harvest if we do not give up.)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가 이르면 거둘 것이기 때문에 선을 행하다가 중간에 낙심하여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But Galatians 6:9 reads, "Let us not become weary in doing good, for at the proper time we will reap a harvest if we do not give up." There will be a time when we reap the harvest so we must not become discouraged and give up.

요즘 새벽기도가 끝나면 뒷마당에 만들어 놓은 텃밭을 둘러보는 것이 저에게 즐거움입니다. 거기에는 오이, 호박, 토마토가 자라고 있고, 딸기도 있습니다. 신철옥 권사님께서 여러 가지 채소 씨를 주셔서 뿌려 놓았던 조금씩 싹이 나고 있고, 상추 모종과 깻잎 모종도 주셔서 자라고 있습니다.

 These days, after morning prayer, I find joy in looking around the garden made in the backyard, where cucumbers, squash, tomatoes, and strawberries grow. Mrs Shin also provided some vegetables seeds as well as cabbage and sesame leaf seedlings, which have now become tiny buds. 

아침마다 채소밭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데, 특히 처음에 씨를 뿌리고 나서 싹이 트기까지 한참을 기다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싹이 돋기를 기다렸는데, 물론 아직도 싹이 나지 않는 화분도 있지만... 암튼,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어린 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Every morning as I give water and pull out weeds from the vegetable garden, I tend to reflect on a lot of things. I remember the first several times I was waiting for the buds to sprout for quite a while. I was aching to see when the buds would sprout, and when some started to come up, they looked so beautiful and lovely.

그런데 어떤 농부도 씨를 뿌리고 다음날 싹이 돋지 않는다고 땅을 파헤치지 않습니다. 씨를 뿌리고 후에 한동안 아무런 흔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주기를 중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씨를 뿌린 후에 싹이 돋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No farmer will sprinkle seeds and hit at the ground or stop watering because buds don't spring up because they clearly know that they have to be patient and wait.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로스알데 힐이라는 작은 마을에 요한이라는 집배원이 있었는데, 젊었을 때부터 마을 부근의 50마일의 거리를 매일 오가며 우편물을 배달했다고 합니다. 어느 요한은 마을로 이어진 거리에서 모래먼지가 뿌옇게 이는 것을 바라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길을 오갔는데, 앞으로도 나는 계속 아름답지 않은 황폐한 거리를 오가며 남은 인생을 보내겠구나’ 요한은 이렇게 자기의 인생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황막감을 느낀 것입니다. , 송이 피어 있지 않은 황폐한 거리를 걸으며 요한은 깊은 시름에 잠겼습니다. 그러다 그는 무릎을 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그것이 매일 반복된다고 해서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그래, 아름다운 마음으로 일을 하자!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름답게 만들면 되지 않은가!’

 There is a mailman named John at a small town located at the Los Altos Hills (로스알데 ) in San Francisco. Ever since he was young, he would come and go the approximate 50 mile distance of the town neighborhood  delivering mails. One day as John was walking, he noticed a hazy cloud of dust on the road and suddenly started to think, "Whether rain or snow, every single day I came and went through this path. I guess I am to spend the rest of my life through such a desolate path." John felt a sense of bleakness in his realization that that was how his life could end and fell into deep grief. But then he smacked his knee and murmured to himself, "This was the work given to me. Even thought it's the same every single day, what worry do I have? Right, let's keep going with a bright mind! If not beautiful I'll just make it beautiful!"

그는 다음날부터 주머니에 들꽃 씨앗을 넣어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우편배달을 하는 짬짬이 꽃씨들을 거리에 뿌렸습니다. 일은 그가 50여마일의 거리를 오가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고 후에 요한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우편물을 배달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그가 걸어 다니는 양쪽에는 노랑, 빨강, 초록의 꽃들이 다투어 피어났고 꽃들은 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After that, John started carrying around wild flower seeds. Every spare time, he scattered the seeds on the path. He did this every day restlessly for the 50 or so miles of walking back and forth. After many days passed, John happily continued to deliver mails as whenever he made his route he was surrounded by marvelous yellow, red, and green flowers.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주간,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Beloved church members, I hope that we will live this week with the heart of a farmer spreading his seeds, not getting discouraged as we do our good deeds, but becoming those who wait patiently on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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