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마르지 않는 샘

생명의 양식
pic_green.jpg

Jan 8, 2012 (영상)

2012.01.09 21:21

自由靈魂 조회 수:3900



 

제목:  새 날의 시작

성경: 마가복음 1장 4~11절

               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2012 1 8(주일)VKC 주일예배(수세주일) 신현철 목사

【본문】마가복음 1:4~11

【제목】새 날의 시작

1.

2012 새해를 맞이하고 나서 오늘이 번째 주일입니다. 또한 오늘은 주현절 번째 주일이고,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사건을 기념하는 수세 주일이기도 합니다.

지난 금요찬양시간에도 말씀 드렸지만, 주현절(Epiphany)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날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처음으로 보여진 날입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출발점이 주현절(Epiphany)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주현절이 깊은 절기인데...

2) Today is the second Sunday of 2012. It is also the first Sunday after Epiphany and the day which celebrates the baptism of the Lord.

I mentioned in last Friday’s service that Epiphany is the day when God revealed himself through Christ and the first day His glory was show through Jesus. In other words, this day was the beginning of a new history.

그런데 주현절은 1 6일로 날짜가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매년 새해가 시작되는 무렵과 거의 일치합니다. 저는 이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주현절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새해를 시작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냥 달력이 바뀌었다고 해서 새해, 새로운 출발, 새로운 역사가 저절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의미를 생각해 , 우리도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날을 시작할 있다는 것입니다.

3) But, the day of Epiphany is fixed to January 6th. This always matches the start of a new year. I think this is actually very meaningful because we can begin the New Year thinking about the meaning of this day. Thus, our lives do not welcome the New Year or a new start just because the calendar changes, but because Christ came to us and revealed himself to us. Through this we can have a truly new beginning.

아마 저와 여러분이 각자 2012 한해를 설계하고 계획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계실텐데.... 그런데 오늘 말씀을 함께 묵상하시면서 정말 날을 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함께 묵상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여신 날이, 저와 여러분의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4) I’m sure each one of us is busy planning for the coming year. But, I hope that today we can spend some quiet time reflecting through the scripture on how we should start new as Christians. In fact, I pray that the new day Jesus came to us can be our new era.

2.

우선 생각해 것은 예수님께서 여시는 새날은 예수님 혼자서 여시는 날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혼자서 날을 열지 않고, 누구와? 세례 요한과 함께 날을 열고 계십니다.

본문을 보면, 4절부터 8절까지는 세례 요한에 대한 말씀이고, 9절부터 11절까지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보다 앞서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우리가 너무나 알고 있는세례 요한이라 이름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에 대해 뭐라고 말합니까? ‘광야에서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 베풀고,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으면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 It’s true that the new era Christ is building is not done solely by him. He is doing so with John the Baptist. In verse 4 through 8 we can see words about John and from 9 to 11 Christ appears. The one before Jesus is a figure we know so well. In fact, what does it say about him?  “John wore clothing made of camel’s hair, with a leather belt around his waist, and he ate locusts and wild honey.”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그런데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여기에 나오는 사람은 세례 요한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길을 준비했던 사람은 세례 요한 이전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2절과 3절을 보면,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사자를 앞에 보내노니 그가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It is written in Isaiah the prophet: I will send my messenger ahead of you, who will prepare your way-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paths for him)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 This is a well known fact to many of us…But, when I was reading these verses for today’s service, I thought that the person that is mentioned here is not just John the Baptist. In other words, there were other people before Christ who prepared the way. In verse 2 and 3 it says: “ as it is written in Isaiah the prophet:  “I will send my messenger ahead of you,  who will prepare your way”—  “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wilderness,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paths for him.’”

말씀을 얼핏 보면 이사야가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 것을 미리 예언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사실은 말씀 속에는 구약의 여러 말씀들이 한데 섞여 있습니다.

우선 출애굽기 23 20절을 보면, ‘내가 사자를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See, I am sending an angel ahead of you to guard you along the way and to bring you to the place I have prepared)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7) It is easy for us to guess  that Isaiah is foreshadowing John the Baptist coming before Christ. But, this passage is mixed with verses from the Old Testament.

First, in Exodus 23:20 it says,” See, I am sending an angel ahead of you to guard you along the way and to bring you to the place I have prepared.” The short passage we looked at refers to this passage from Exodus.

 

말라기 3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너희가 구하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너희가 사모하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See, I will send my messenger, who will prepare the way before me. Then suddenly the Lord you are seeking will come to his temple; the messenger of the covenant, whom you desire, will come," says the LORD Almighty) 말씀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사야 40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 make straight in the wilderness a highway for our God)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8) Also, in Malachi 3:1 it is recorded, “See, I will send my messenger, who will prepare the way before me. Then suddenly the Lord you are seeking will come to his temple; the messenger of the covenant, whom you desire, will come," says the LORD Almighty.”

Then in Isaiah 40:3 are the words, “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 make straight in the wilderness a highway for our God.”

다시 말해서 2, 3 말씀은 구약의 처음(출애굽기) 중간(이사야) (말라기) 모두 인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 있냐면, 구약의 처음과 중간과 , 구약의 모든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구약에 나오는 모든 선지자와 예언자들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세례 요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9) In other words, Mark 1:2-3 references the beginning of the Old Testament (Exodus), the middle (Isaiah) and the end (Malachi). The reason for this is to show that all of the Old Testament is waiting and preparing for Jesus. Plus, this also indicates that all the prophets were like John the Baptist – waiting for the coming of Christ.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날을 여시는 길을 세례 요한이 준비하고 있었고, 그보다 앞서서 다른 세례 요한이 예언을 하였고, 다른 세례 요한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세례 요한이라는 이름은 예수님 당시의 세례 요한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했던 구약의 모든 사람을 통틀어서 말씀하는 것이라고 있습니다.

10) So, Christ’s coming was prepared by John the Baptist and before that were many other ‘John the Baptists’. With this in mind, we can read John the Baptist mentioned in today’ s scripture as a reference to all those people in the Old Testament that prepared the way and not as just one person.

그런데, 예수님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도 날을 열기 위해 세례 요한과 같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구약 시대의 모든 선지자와 예언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기다리는 세례 요한이었다면, 저와 여러분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세례 요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어야 날은 다시 오실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새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2 한해 동안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길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다른 세례 요한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1) But don’t we, living in the generations after that of Jesus, need to prepare Jesus’ path? No, we do not. We today must also prepare like John in order to open the new day. If all the prophets in the Old Testament were like John waiting for Jesus Christ’s path, we must become like John waiting for Jesus’ return. So the new day that we open must become one that starts together with Jesus’ arrival.

Beloved church members, during the year 2012, I hope that we can become like John the Baptist as we wait and prepare for Jesus’ path.

3.

그런데 혹시 이렇게 질문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처음으로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세례 요한이 기다리고 준비했다고 하는데.... 세례 요한이 필요했을까? 예수님께서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그냥 혼자 하시면 되지, 세례 요한의 도움, 세례 요한이 길을 예비하는 것이 필요 했느냐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도움이 필요 없으신 분입니다. 스스로 충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 세례 요한의 도움, 준비가 필요했느냐는 것입니다.

12) But you might ask, “When Jesus first came to us John the Baptist was here waiting for him. But why did Jesus need John? Jesus is the almighty son of God, why does he need the help of John the Baptist?”

You have a point. Jesus doesn’t need humans’ aid. He is our almighty God. But why did he need John’s preparation?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여는 성격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여시는 공장을 세우거나, 빌딩을 짓는 것과 같은 인격적인 것이라면 세례 요한의 준비가 필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말씀만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듯이 창조하시면 되니까요.

13) To answer this question, we need to know the characteristics of the ‘New Era’ Jesus is bringing with him. If this ‘New Era’ consisted of inhumane activities such as building factories and buildings, Jesus probably would not have required John’s aid, since he could have just done it with his words.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에덴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번째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모습, 하나님과 함께 동산을 거닐면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고, 깊은 사랑을 함께 나누었던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냥 보석이 많고 먹을 것이 즐비한 낙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 하나님과 사귀는 삶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여시는 날에는 반드시 세례 요한의 준비와 기다림, 동역과 같은 인격적인 관계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14) The ‘New era’ Jesus actually opened for us is ‘God’s World’ and thus Eden. Jesus planned to restore the world in which Adam and Eve lived together, walked around the garden with God and shared love. He means to restore not the world filled with diamonds and food, but a world in which our relationship with God is true and faithful. This is the reason why Jesus needed John’s preparation and patience.

지난 금요찬양 시간에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잔치 사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리아가 부탁하지 않아도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지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혼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서 주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만큼 예수님은 충분한 능력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15) I thought about last Friday’s sermon in which we discussed the marriage of Ghana in Gospel of John. Jesus already knew even though Maria didn’t ask, inasmuch as God is almighty. He himself alone also could have turned water into wine (or make wine without even water) and gave it to them, because Jesus has such power.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하셨습니다. 마리아의 이야기를 듣고, 하인들의 손을 빌어서 물을 길어오게 하셨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습니다. 자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은 광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 천국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지 않을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시는 날이 바로 이와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엄청난 기적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 기자는 가장 번째 표적으로 가나의 혼인잔치 사건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6) However, Jesus did not use that power. He heard Maria’s story, kindly asked the servants to bring him water, and shared it with everyone. He saw everyone there be happy and joyous. And His disciples learned from this event the glory and heaven of God. The world Jesus opened for us is just the same. That is why, in spite of many miracles, the Gospel of John includes the story of marriage of Ghana first.

저는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사람들도 역시 세례 요한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들,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I think everyone appearing in the second reading of Gospel of John is also like John in that they paved the way for Jesus and awaited him.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사람이 독주하거나, 교회의 모든 일을 감당한다고 생각하면 때부터 문제가 일어납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세례 요한이라고 생각할 , 자신을 겸손하게 물을 긷는 종이라고 생각할 , 그렇게 해서 각자 주신 달란트에 따라 주님께서 여시는 날에 모두 함께 참여할 ....천국의 모습, 영광의 모습을 보여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도하시는 잔치에 모든 사람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참여할 ... 잔치가 천국의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17) This is also true for churches. Church starts to have problems when one person attempts to take care of everything by him/herself. Rather, when  everyone thinks of themselves as John the Baptist, and the servant who carried water, and thus use his/her talent to participate in the creation of God’s world, that is when we can see views of glory and heaven. When we participate in God’s world with true happiness, we can make that world into heaven.

주님께서는 우리 빅토리아 한인교회를 통해서도 날을 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세례 요한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단한 광야에서 살고 있을지라도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메뚜기와 석청을 먹을지라도 나보다 능력 많으신 분을 기다리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물을 길어 항아리에 붓는 충직한 종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이와같은 세례 요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날을 열어 가시는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있기를 바랍니다.

18) Jesus plans to open a New Era for us at the Victoria Korean Church. But who should be John the Baptist? Anyone who awaits Jesus even in tiring wilderness. Who should be the one to await Him while eating nothing but locusts? Who should be the faithful servant? I hope all of you, myself included, can be John the Baptist, so that we can experience the glory of God along with Jesus who opens a new era for us.

4.

그러면 우리가 주님과 함께 날을 여는 세례 요한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찡한 느낌을 받았는데...

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물로 베푸는 것이고,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으로 베푸는 세례입니다. 비교가 되지 않는 세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필요도,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세례를 요한에게 받으셨습니다.

19) Then what should we do to live like John the Baptist who opened the new day with God?

When I read about John and Jesus in today’s scripture, I was touched…

Verse 9 reads that Jesus “came from the Nazareth of Galilee, and was baptized of John in Jordan.” John baptizes with water, while Jesus baptizes from the Holy Spirit. These two are incomparable.

But Jesus did not need, and had no reason to, be baptized by John. Despite that, he still got one.

다른 한편, 세례 요한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도 마태복음 11 11절에서 세례 요한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낳은 중에 세례 요한보다 자가 없다’(Among those born of women there has not risen anyone greater than John the Baptist) 심지어 마태복음 14 5절을 보면,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Herod wanted to kill John, but he was afraid of the people, because they considered him a prophet)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왕이었던 헤롯도 두려워했던 사람이 세례 요한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7절에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라고 말하고 있고, 심지어는 자신이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자신은 쇠하여 사람이고 예수님은 흥하실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0) On the other hand, what kind of person is John? In Matthew 11:11, Jesus says, “Among those born of women there has not risen anyone greater than John the Baptist.” Even in Matthew 14:5, “[King] Herod wanted to kill John, but he was afraid of the people, because they considered him a prophet.”

However, John tells the people that Jesus is “one more powerful than I” and that “the thongs of whose sandals I am not worthy to stoop down and untie.” Furthermore, in John 3:30, John says, “He must become greater; I must become less.”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긴장과 갈등, 경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 편하게 서로를 신뢰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라이벌이라는 단어가 (river) 파생어인강가에 사는 사람들 일컫는 ‘rivalis’에서 어원을 두고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요단강의 rival 관계라고 있습니다.

21) We live in competitions, tensions, and conflicts.  It is difficult to be at ease and trusting of each other. Although I have mentioned before, the word ‘rival’ is derived from the Latin word ‘rivalis’, a term denoting persons who live on opposite banks of a river used for irrigation. So considering this, it can be thought that Jesus and John the Baptist are in rival relationship of Jordan River.

하지만 분의 만남은 전혀 다른 만남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향해,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향해 지극한 사랑과 존경을 보여주시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동역하는 모습의 가장 좋은 모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20 However, it would be wrong to think that John and Jesus are rivals. John and Jesus have shown love and respect for each other. Their working together for their mission work has set a good example for others.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례 요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과 이와같은 연합과 일치가 있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처럼 깊은 사랑과 신뢰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Beloved church members, in order for us to bear the mission of John the Baptist, we need to be united with God. We need to be in one with the love and trust that Jesus and John have shown us.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이와같은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빅토리아의 rival들이 모두 상생하고 협력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날을 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23) In addition, we need to have similar relationships with each other. All the rivals in Victoria should co-operate to gain a win-win situation. That is how we can become those who open a new era.

5.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혹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씀은 성경의 본질적인 말씀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교훈이라고...그런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윤리적인 교훈이 아니라, 신적인 명령입니다.

But if I say this, there might be others who might say this: Words that tell you to get along with each other is not essential words of the Bible, but only ethical and moral lessons… But that is not true. They are a divine command from God.

왜냐하면 10절과 11절을 보면,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As Jesus was coming up out of the water, he saw heaven being torn open and the Spirit descending on him like a dove. And a voice came from heaven: "You are my Son, whom I love; with you I am well pleased)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4) Why? In Mark 1:10-11, “As Jesus was coming up out of the water, he saw heaven being torn open and the Spirit descending on him like a dove. And a voice came from heaven: “You are my Son, whom I love; with you I am well pleased.”

여기서 하늘이 갈라지다라는 단어는 마가복음 15 38절에서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고  찢어지다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장벽이 열렸다는 의미입니다. , 순간에 하늘만 열린 것이 아니라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4) Here, the word used to describe heaven being ‘torn” open is a word also used in Mark 15:38: “The curtain of the temple was torn in two from top to bottom.” As the heaven was torn, the barrier between God and man opened. Also, at that moment, Holy Spirit descended like a dove.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요단강 속에서 위로 올라 오시는 예수님과 하늘에서 하늘이 열리고 성령님의 내려오심이 순간적으로 교차되는 장면이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순간은 성부, 성자, 성령님께서 함께 어우러지는 역사적인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26) As Jesus was coming up out of the water, the Spirit descended on him. At that moment,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came together.

앞에서 주현절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땅에 처음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계시하신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주현절 번째 주일에 예수님의 세례를 생각해 보는 이유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거룩한 사랑의 일체로 함께 하심을 드러내시는 엄청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27) In the beginning, I have told you that Epiphany has a meaning of God showing Himself to this world the first time through Jesus Christ. So the reason we are thinking about Jesus’ baptism in the first week of Epiphany is because his baptism shows one of the greatest moments where the Father and the Son, Jesus, and Holy Spirit are coming together in one.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땅에 처음으로 자신을 어떻게 드러 내셨냐면, 삼위로 일체하신 하나님으로... 가장 깊은 사랑과 신뢰, 떼려야 없는 몸으로....그래서 인간의 언어로 도저히 설명할 없어서 오죽하면 삼위일체라는 말을 만들어낼 밖에 없었겠습니까!! 어쨌든 삼위일체적 방식으로 자신을 세상에 처음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Have not translated since the above paragraph is repeated]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삼위일체적 속성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 12절을 보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The body is a unit, though it is made up of many parts; and though all its parts are many, they form one body. So it is with Christ)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라는 것입니다.

28) This indicates the attribute of God. But even for us who believe in God, we are required the attribute of the Trinity. In 1 Corinthians 12:12, “The body is a unit, though it is made up of many parts; and though all of its parts are many, they form one body. So it is with Christ.” The church is the body of the Christ, and the church members are beings that make the body of the Christ.

그러니 성도의 연합과 일치는 윤리적인 교훈이 아니라, 신적인 명령인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너희도 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날을 열어갈 있다는 것입니다.

29) That is why being united with each other is not just a moral lesson, but a divine command. Just as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are one, we should become one as well. That is how we can open a new era.

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은 어떻게 시작됩니까? 2012 1 1 달력이 시작되었으니까 저절로 날이 시작됩니까? 물론 세상의 달력은 그렇게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날은 그렇게 시작되지 않습니다.

30) How does a new era start? Does it automatically start as January 1, 2012 starts? No, the new era of God does not start that way.

주님의 길을 준비하였던 세례 요한처럼,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날을 준비하는 사람을 통해서 날이 시작됩니다.

The new era starts through those who prepare for it, like John the Baptist who prepared the way of the Lord, and like the prophets of the Old Testament.

또한 세례 요한과 예수님처럼 깊은 신뢰와 사랑으로 함께 날이 시작됩니다.

31) Also, the new era starts when we are with trust and love, like those of John and the Christ.

뿐만 아니라, 믿음의 성도들이 서로를 몸으로 여기며 삼위로 일체하신 하나님을 따라 살아갈 ....

In addition, the new era starts when we of the same faith are in one body and live according to God as Trinity…

비로소 땅에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고 날이 열리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2012년에 그와같은 날을 열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I hope that in 2012, you and I become those who open and start the new 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