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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샘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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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예배 관계로 설교 원고를 올립니다. 

201977(주일)성령강림절 후 네 번째 주일

본문갈라디아서 6:1~10 제목짐을 서로 지라, 자기의 짐을 지라

 

1.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65절을 보면,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포르티온’(φορτίον)으로 개인의 등에 질 수 있는 군인의 배낭같은 작은 짐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말하는 책임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져야 하는 인생의 ’, ‘삶의 책임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으로, 부모, 자녀로 짊어져야 할 이 있고, 학생은 학생의 이 있고, 직장과 일터에서는 생활인으로서 져야 하는 이 있습니다.


In Galatians 6:5, it says, “for each one should carry his own load.” Here, "load," (φορτίον) refers to a small load, such as a soldier's backpack. The word 'load' here is similar to 'responsibility'. In other words, everyone has a burden of life and a responsibility for that life. There is a "load" that needs to be carried by a wife and a husband, a parent, and a child for each of their house members. A student needs to carry the load of a student, and a worker must carry the load for everyone in the workplace.

 

그런데 군인들이 매는 배낭의 무게는 모두 똑같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의 무게는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어떤 사람은 비교적 가벼운 짐을 지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균등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실제로 지는 의 무게도 다르지만, 그 짐의 무게를 어떻게 느끼냐도 다릅니다. 무거운 짐도 가벼이 지는 사람이 있고, 가벼운 짐을 유독 무겁게 느끼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짐이 무거운지, 가벼운지는 오직 그 사람만이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The weight of the backpacks that the soldiers wear is the same, but the weight of the 'load' that one must carry is slightly different. Some people have a heavier burden than others, and others have relatively lighter burdens. In this sense, 'load' is not 'equal'. However, how you feel the weight of the load varies from person to person. Some people may have heavier load but carry it lightly, and some people may have lighter load that they cannot handle. This is why how heavy one’s load can only be determined by oneself, and why no one else can judge the load of others.


그래서 바울은 4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라고 말합니다. 새번역으로 보면 각 사람은 자기 일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무거운 짐도 가벼이 지는 사람 있지만 가벼운 짐도 무겁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내가 져야 할 짐을 잘 지고 있으면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으로 충분할 뿐, 다른 사람에게 잘났다고 떠벌릴 필요가 없습니다


That’s why Paul said in verse 4, “Each one should test his own actions. Then he can take pride in himself, without comparing himself to somebody else.” Some people can easily carry heavy luggage, but light luggage can feel heavy too. It is enough to praise ourselves if we are carrying our own burden, but it does not give you the right to brag.


3절을 보면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고 말합니다. 역시 새번역에서는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충분히 질 수 있는 짐인데도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짐이었다고 과장하거나, 반대로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지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하는 것도 정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야 합니다. 짐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In verse 3, he says, "If anyone thinks he is something when he is nothing, he deceives himself." It is not an honest attitude to exaggerate that it was "too difficult and burdensome" when it is a burden that he or she can bear. It is also not honest to speak as if it is not burdensome while carrying burdens that are difficult to bear alone. You have to say that it is hard when it is hard. It is not a shame that the burden feels heavy.


어쨌든 무덤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병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나름의 이 있습니다. 사는 것은 곧 짐을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1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으면 더이상 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짐을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을 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짐의 실제적인 무게는 더 무거워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멍에는 지금까지 짊어졌던 짐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 짐을 지는 순간 참다운 쉼과 안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There is no one who does not have a 'load' to carry except for the people in the grave. There is a "load" for people in their final hour. This is because living in itself translates to carrying a “load”. This is why Jesus said in Matthew 11:28,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This does not mean that you no longer have to bear the burden of believing in Jesus. It means that you will now carry a new burden. Verse 29 says,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From now on, we will have a new 'burden'. Maybe the actual weight of the load may become heavier. However, the "yoke of Jesus" is quite different from the burden that we have carried so far. It is because we can get a true 'rest and peace' at the moment of the burden

 

2. 다른 사람을 위해 짐을 진 적이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62절을 보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합니다. 5절에 나오는 2절에 나오는 은 의미가 다릅니다. 5절의 은 배낭같은 것이지만, 2절의 바로스’(βάρος),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짐을 함께 지라고 말합니다. 특히 지라는 것은 헬라어로 바스타제테’(βαστaξετε)인데 일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짐을 벗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According to Galatians 6:2 it is written, "Carry each other's burdens, and in this way you will fulfill the law of Christ." The meaning of the 'burden' in verse 5 and 2 are slightly different where in verse 5 it means backpack, but in verse 2 it means ‘βάρος’, a heavy burden that alone can not be solved. Paul says to share a burden that cannot be carried alone. Here especially, 'bear my burdens' is a Greek word for ‘βαστaξετε’, which does not end with helping temporarily but continuously until the burden is unloaded.


그런데 어떤 짐을 함께 져야 하는 것일까요?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고 말합니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 중에 여러 가지 이유로 죄를 짓고 실족한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사람을 바로잡으십시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살펴보면서 조심 하십오. 이렇게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짐을 짊어지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바로잡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복시킨다는 뜻입니다. 실수와 잘못을 정죄하지 말고 온유한 마음으로 상처가 치유되도록 회복시키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실수와 약점과 허물이 많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용서와 자비,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So what kind of burden should we carry together? In verse 11 it says , "Brothers, if someone is caught in a sin, you who are spiritual should restore him gently. But watch yourself, or you also may be tempted." It seems that there were some of the Galatians church members who sinned and stumbled for various reasons. However, it was not easy for them to return to the community again because the people's views were not good. So Paul said, "Correct such a man. And be careful watching yourself. So share your burdens with each other." What we have to do here is to "correct" our burden. This means 'to restore'. Do not condemn mistakes, but restore the wound to heal with a gentle heart. No one is perfect, and there are many mistakes, weaknesses and faults, so we are all people who need forgiveness, mercy, and grace.


저는 군대에 가서 처음 6주 동안 훈련을 받았는데, 가장 힘든 훈련은 군장을 메고 100km를 행군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체력의 한계가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쓰러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 사람의 군장을 나눠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 짐을 나눠지게 되었는데, 군장의 무게가 25kg 정도 됩니다. 거기에 총을 들고 가면 자기 짐도 버거운데 다른 사람의 군장까지 짊어지면 무려 50kg 가까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함께 군장을 짊어지고 100km 행군을 마치고 동트는 새벽녘에 군대 막사로 돌아올 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For the first six weeks of my training in the army, the hardest training was marching 100km. As time went by, blisters were formed on the soles of my feet and my limit of fitness was approaching. However, when another person staggered and fell down, the people around him carried his load by dividing it. I also shared the burden, but the weight of the army gear is about 25kg. If you add the weight of the gun, it is heavy enough to be carrying your own gear, but to carry another person's gear on top of that is about 50kg. However, I cannot forget the excitement I felt when returning to the army barracks at dawn after the tiring 100km march.


짐을 서로 진다는 것은 실수와 부족함에 대한 사랑의 반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짐을 진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완전함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고, 그 사람의 현실, 즉 약함과 부족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문제와 고민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기도하고, 실제로 짐을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


"Carrying the burden of one another" is the reaction of love to mistakes and scarcity. To take the burden of the person is also to not ask the person for perfection, but to understand and accept the reality of the person, their weaknesses, and scarcity. We are actively listening to problems and troubles, praying together, and actually sharing our burdens.


4천 년 전에 중국인들이 한자(漢字)의 원형인 상형문자(象形文字)를 만들 때의 이야기입니다. <크다>는 글자를 어떻게 표현할 줄 몰라서 고민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의논을 거듭한 끝에 사람을 사용하여 크다는 뜻을 나타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큰 사람이냐를 놓고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재물이 많으면 큰 사람인가? 권력이 강하면 큰 사람인가? 아들이 많으면 큰 사람인가?’ 의논을 거듭하던 끝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등에 가로로 짐()을 올려놓은 것이 크다()’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This is the story of 4,000 years ago when the Chinese created hieroglyphics, the prototypes of Chinese characters. They were worrying because they did not know how to express the word "great". After a long discussion, they decided to use the word 'person' to mean 'greatness'. However, it was not easy to conclude what person was a great one. 'Is he considered a great man if he has a lot of wealth? Is a great man one that is powerful and strong? If you have many sons, does that make you great?" They came to the conclusion that someone who is great is someone who carries a heavy burden. That is why the word "great" was made by placing a burden()on the back of the person() horizontally to represent the word ‘great’.

 

3.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6:6~10)


9절을 보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자기의 짐을 질 때도, 다른 사람의 짐을 함께 질 때도 중도에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짐을 지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It is written in verse 9, 'Let us not become weary in doing good, for the proper time we will reap a harvest if we do not give up.' There are many times when you want to give up your load because it is never easy to carry them.


선다싱(Sadhu Sundarsingh)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네팔지역으로 여행을 할 때였습니다. 친구 한 사람과 히말라야산을 넘어가게 되었는데 추위로 죽어가는 행인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날의 추위는 주위를 돌아볼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을 정도로 혹독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길을 가던 친구는 그냥 가자고 하고 Sundarsingh은 그를 두고 갈 수가 없다며 옥신각신하다가 친구를 먼저 보내고 자기는 길옆에 쓰러져 있는 그 행인을 들쳐 업었습니다. 지치고 배고팠던 Sundarsingh은 그 사람을 업고 산을 넘어가는데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을 다해 마을 가까이 도착하여 이젠 살았구나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머지않은 곳에 희미한 물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가가 보니 먼저 길을 떠났던 그 친구가 쓰러져 죽어 있어 있었습니다. Sundarsingh은 자기가 들쳐 업은 사람 때문에 몸에서 열이나 추위를 이기고 험난한 산길을 넘을 수 있었고, 등에 업힌 사람도 선다싱의 체온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떠난 친구는 추위와 홀로 싸우다 얼어 죽은 것입니다. 그후 Sundarsingh인생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지고 가야 될 짐이 없을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It was when Sadhu Sundarsingh traveled over the Himalayas to Nepal. While he and his friend was walking over the mountain, they saw a man who was dying with the cold. The cold of the day was so harsh that they could not afford to turn around. While the friend insisted that they just leave him, Sundarsingh couldn’t leave him, so after arguing, he sent his friend ahead, and he carried the passerby who was lying on the side of the road. Sundarsingh was tired and hungry and it was just too tough to carry him over the mountains, but he finally arrived at a village and said, 'We are alive.’ When he approached the village, he saw a blurry figure that turned out to be the friend who had gone ahead. Sundarsingh was able to overcome the cold because of the body heat of the person he was carrying and the person he was carrying also overcame the cold through Sundarsingh’s body heat, but the friend who left first was frozen, trying to fight the cold alone. Since then, when Sundarsingh was asked, "What was the hardest thing in life?" he answered, "When I did not have the burden I needed to carry.”


주위에 약한 형제들을 외면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 자기의 짐을 지라”(5)고 말한 바울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2)고 말합니다. 우리는 먼저 각자에게 허락된 짐을 잘 져야 합니다. 그리고 연약한 지체의 짐을 나누어 져야 합니다. 그것이 나도 살고 그 사람도 사는 길입니다. 짐이 없기를 기도하지 마시고 짐을 잘 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끝까지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않고 선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마침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We often want to turn our backs on the weaker brothers, but Paul says in verse 5, "each one should carry their own load,” and in verse 2, "Carry each other's burdens.” First, you have to carry your own load. Then we must share the burden of fragile members. That is the way I can live and the person can live. Let us not pray that we have no burdens, and that we may carry our burdens well. Do not be discouraged until the end, do not give up, and finally pray for good fr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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