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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샘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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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4, 2013(신현철 목사)

2013.07.17 10:05

소풍 조회 수:634

2013 7 14(주일)VKC 성령강림절 (8)주일 예배

【본문】레위기 19:9~18

【제목】이웃 (Neighbours)

1.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와 생각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EBS에서 만든 영상물이 있는데, 전체는 50 정도 걸리는데, 오늘은 중에 일부분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영상>

On EBS there was a 50 minute footage on the difference in thinking between the Western and Eastern culture. Today, we will see a short part of the clip together.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운데 있는 남자의 얼굴이 행복해 보입니까? 아니면 불행해 보입니까?

What are your thoughts about this? Do you think that the man in the center looks happy or unhappy?

 

저는 비디오를 보면서, 동양 사람들은 확실히 서양 사람들에 비해 관계와 주변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서양 사람들은 개체 자체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는데....

 As I watched this video, I realized that Eastern people relatively find more importance in relationships with one's surroundings, whereas Western people put more emphasis in oneself.

실제로 우리 나라를 생각해 보면, ‘이웃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해서 ‘이웃 사촌이라는 말도 있고, ‘천금으로 밭을 사고, 만금으로 이웃을 산다 말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느 집에 초상이 나면 이웃들은심상이라 하여 일정 기간 동안 상주와 똑같이 근신을 하기도 했던 풍습도 있었습니다.

 In fact when we think of our own nation, we have a saying "A thousand pieces of gold will buy a land, ten thousand pieces of gold will buy a neighbor." We go so far as to behaving ourselves in the same manner as a fellow neighbor when he or she is in mourning.

담장에 구멍을 뚫고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닌 특별식을 만들었을 서로 주고받는 ‘비린 구멍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비린 구멍이냐면, 쇠고기, 돼지고기를 비롯해서, 멸치까지도 특별식으로 쳤는데, 이와같은 어육류를 보통 비린 음식이라 했기에비린 구멍이란 이름이 생겨나게 것입니다.

  담장에 구멍을 뚫고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닌 특별식을 만들었을 서로 주고받는 ‘비린 구멍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The reason why we call it "fishy hole" is because the food consisted of anchovies and fish, along with beef and pork. Thus, it was named 'fishy hole.'

어쨌든 우리가 ‘이웃이라는 단어를 들을 , 별로 나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고약한 이웃을 만나서 고생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런 경우에도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그렇게 미운정 고운정이 들다 보면 결국 나중에는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오늘 분문 말씀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너무나 당연한 말씀, 그래서 윤리적인 가르침처럼 생각될 있습니다.

Usually when we hear the word "neighbor" it doesn't particularly strike a negative connotation. Of course there are times when people have a hard time due to an unpleasant neighbor, but often even in those cases we make an effort to make a good relationship. And normally by having been through thick and thin together, such relationships do happen. So today's message is about loving one's neighbor; this is pretty obvious, and thus we can think of it as an ethical lesson/guidance.

그런데 오늘 말씀을 자세히 묵상해 보면, 본문에서 말하는 이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웃과 다르다는 사실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통 이웃을 어려울 제일 먼저 뛰어와서 우리를 도와주는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이웃집 아줌마를 생각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이웃들은 하나같이 피하고 싶은 이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이웃들을불편한 이웃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But if we reflect on today's passage, we can see that the neighbor referred to n the Word is different from the neighbor that we usually think of.  What often come to mind when we think of neighbors are such good-hearted people as a mister who runs overs when we need help, or a lady who would bring over some of her delicious cooking. The neighbors mentioned in the passage mean  those who we want to avoid altogether, and therefore can be termed as "uncomfortable neighbors."

암튼, 오늘 말씀을 통해서이웃 대한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Anyways, today's sermon will help us to reflect upon and understand the meaning of "neighbors."

 

2.

우선 본문 9, 10절을 보면, 불편한 이웃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모퉁이까지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포도원의 열매를 따지 말며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난한 사람 그대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 혹은 신분이 비천하고 보잘 없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거류민 저와 여러분 같은 alien, foreigners, immigrants 나타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불편한 이웃입니까?

When you reap the harvest of your land, do not reap to the very edges of your field or gather the gleanings of your harvest. Do not go over your vineyard a second time or pick up the grapes that have fallen. Leave them for the poor and the alien. (Leviticus 19:9-10)

These people – the poor and the alien – are often considered by others as neighbours who are uncomfortable to be with.  Why?

이유는, 이런 이웃이 옆에 있으면, 자기 밭에서 추수할 때조차 모퉁이에 있는 곡식은 아예 추수할 없고, 추수하다가 떨어진 이삭과 포도도 주워 담을 없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확실히 지키기 위해 아예 추수의 1/60 이런 사람들의 몫으로 떼어 놓는 법을 만들기도 했는데.... 암튼, 이런 이웃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이웃이라고 있습니다.

 When a person has neighbours like them, it is hard for him to harvest crops from the corner of his field… A law was even made to allocate 1/60 of the crops harvested to be given to those who were poor… Anyway,  these people are often described as a burden to have as a neighbour.

그런데 그나마 이런 사람들은 11절에 나오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나은 편인데, 왜냐하면 11절을 보면,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말하는 이웃은 도둑질하고 속이고, 거짓말하는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However, they are much better than the neighbours described in verse 11.

Do not steal. Do not lie. Do not deceive one another. (Leviticus 19:11)

The neighbours in verse 11 are those who steal, lie, and deceive one another.

12절을 보면, 너희는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이웃은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까지도 팔아서 거짓말을 하는, 한마디로 사기꾼같은 이웃입니다.

Do not swear falsely by my name and so profane the name of your God. (Leviticus 19:12)

Those neighbours even profane the name of God and are like con-men.

그리고 13절을 보면, ‘너는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이웃은 억압하고 착취하는 이웃인데, 억압 무력이나 권력으로 약자나 가난한 자를 짓누르는 의미하고, 착취 직역하면 가죽을 벗기고, 뜯어내 것을 의미합니다. 더군다나 얼마나 지독한 이웃이냐면, 하루 벌어서 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의 생명줄과 같은 품삯을 갖고 장난을 치는 사람이니 이런 사람이 옆집에 살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Do not defraud your neighbor or rob him. Do not hold back the wages of a hired man overnight (Leviticus 19:13)

How would you feel if you had a neighbour who tries to rob you and play with the wages that you worked hard to earn and deserve?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14,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가니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는지 아실텐데, 장애인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고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이웃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앞을 없는 맹인 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치워주고 피하게 도와주어야 할텐데....오히려 여기에 나오는 이웃은 연약한 사람의 약점을 이용해서 공격하는 악랄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Do not curse the deaf or put a stumbling block in front of the blind (Leviticus 19:14)

These kinds of neighbours use a weak person’s disadvantages against him and try to manipulate and attack him.

16절을 보면, 너는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웃은 먼저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비방하는 이웃인데, 한마디로 악의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거짓 사실을 퍼뜨리면서 중상모략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피를 흘리면서 생명의 위협을 당해도 자기의 이익만은 철저하게 챙기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Do not go about spreading slander among your people. Do not do anything that endangers your neighbor's life. (Leviticus 19:16)

They would do whatever it takes to take their profit even if it means harming others.

한번 정리해 보면, 여러분 앞집에 사는 아저씨는 추수 때만 되면 찾아와서 떨어진 낱알을 주워가고, 뒷집 아줌마는 우리집에 있는 물건을 슬쩍 슬쩍 집어가는 나쁜 버릇의 소유자이고, 건넛집 할아버지는 뻥이 얼마나 쎈지 속은 적이 번이 아니고, 옆집 아저씨는 조폭 출신인데, 너무 무서워서 매번 잔디까지 깎아주어야 하고, 맞은편에 사는 아줌마는 동네방네 다니면서 우리집 흉을 보고, 중상모략을 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사람들과 이웃으로 산다면?

How would you feel if you had neighbours who are always trying to deceive you, manipulate you, and rob you?

3.

 

받으시죠? 만약 우리 주변에 이런 이웃들 뿐이라면 당장에 이사를 가든지, 아니면 담을 아주 높게 쌓고 절대로 왕래를 하지 말든지... 아마 이렇게 해야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이웃을 향해 어떻게 하라고 말씀 하냐면, 17, 너는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Do not hate your brother in your heart. Rebuke your neighbor frankly so you will not share in his guilt)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는 말씀은 바로 잡아주고, 교정하라는 의미인데, 그러니까 적어도 성경에서도 지금까지 언급한 사람들이 제대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반드시 바르게 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잡아주기 전에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냐면, 마음으로 미워하지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잡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들을 마음으로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걸음 나가서,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Do not seek revenge or bear a grudge against one of your people, bu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 am the LORD)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원수를 갚지 말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냥 때리면 맞고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일까요? 사실 구약적인 방법에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손해를 입히면 눈에는 , 이에는 방법으로 갚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도둑질하고, 거짓말 하고, 사기를 쳐서 손해를 입힌 사람이 있다면, 사람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되갚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구약적인 보복인데, 문제는 여기서는 그렇게 보복하는 것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상당히 신약적인 말씀이라고 있는데....

 

어쨌든 원수를 갚지 말고,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악한 이웃이라도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물론 이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의 뇌에서 자기를 생각할 때에 활성화되는 부분이 있는데, 내측 전두엽 부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자녀에 관하여 생각할 때에도 바로 부분이 활성화 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엄마가 자녀를 생각할 때는 자기 자신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 말씀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그럴 있다고 해도, 우리가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불편한 이웃들을 어떻게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있을까요? 저는 이게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You are all getting angry right? If we were surrounded by neighbours like these people, we would instantly move or build incredibly high walls to refrain from any communication.

 

However, the Bible tells us to act like this towards our neighbours: in verse 17, it states, “Do not hate your brother in your heart. Rebuke your neighbour frankly so you will not share in his guilt.” Here, the word “rebuke” means “set straight, correct,” so the Bible implies that these people are not righteous or proper people. The Word also instructs us not to “hate [our] brother in [our] hearts”; it means that we should not hate them in order to rebuke them or set them straight. 

Also, verse 18 states, “Do not seek revenge or bear a grudge against one of your people, but love your neighbour as yourself. I am the LORD.” 

Here, what does it mean to “not seek revenge or bear a grudge?” Frankly, the Old Testament states that if one does harm to me, I am to seek revenge based on the saying “An eye for an eye, a tooth for a tooth.” In other words, if someone steals from, lies to, or deceives me, I can repay the damage with the same means according to the Old Testament. However, verse 18 tells us to refrain from revenge, a characteristic of a message from the New Testament. 

Anyways, the Word tells us not to seek revenge but to love our neighbours as we love ourselves. How is it possible for us to love our neighbours as ourselves, no matter how wicked they are? Of course, it is not an impossible task. When we think about ourselves, we stimulate a certain part of the brain called the Medial Frontal Lobe. Also, when a mother thinks about her children she also stimulates the same part. In other words, a mother cares for her children as she cares for herself. Thus, loving one’s neighbour as oneself is not completely impossible. 

It is possible for a mother to love her children as herself, but how can we love our “uncomfortable neighbours” as ourselves? I personally thought that this would not be possible.

 

4.

 

그러면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설교를 준비하면서 혼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그래도 저는 이런 이웃과는 도저히 함께 없습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도 있는데, 아이들도 있는데 좋은 이웃과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 나도 네가 정말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빨리 죽어서 천당에 와야 하는데... 여기에 있는 이웃들은 좋은 이웃들이니까...’

 

그런데 순간 어떤 깨달음이 왔냐면, 너의 눈에는 지구에 63억명이 넘게 살고 있으니 엄청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그저 100명이 사는 조그만 마을에 네가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보렴....’ 100 중에 52명이 여자이고, 48명이 남자입니다. 30명이 어린 아이들이고, 70명이 어른, 노인은 7. 70명이 유색인종이고 30명이 백인입니다. 61명이 아시아인이고, 13명이 아프리카인, 13명이 남북아메리카인, 12명이 유럽인, 나머지는 남태평양지역의 사람입니다. 33명이 기독교, 19명이 이슬람교, 13명이 힌두교, 6명이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20명이 영양상태가 충분하지 않고, 사람은 아사 직전입니다. 하지만 15명은 비만 상태입니다. 6명이 모든 () 59% 독점하고 있고, 전부 미국인입니다. 74명이 39% 갖고 있으며 20명은 겨우 2% 나눠 갖고 있습니다. 75명이 먹을 것을 비축하고 있고, 비바람을 피할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25명은 그렇지 못합니다. 17명은 안전하고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합니다. 마을에서 사람이 대학을 나왔고, 사람이 컴퓨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14명은 글을 읽지 못합니다. 만약 당신이 체포나 고문 또는 죽음을 겁내지 않고 신앙과 신조, 양심에 따라 무엇인가를 있고, 말을 있다면 그렇지 못한 48명보다 복을 받은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공습이나 습격 지뢰에 의한 살육, 무장집단의 강간이나 납치를 겁내지 않아도 된다면 그렇지 못한 20명보다 복을 받은 것입니다.

 

세상이 만약 100인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인데, 책을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 옆집과 뒷집에 누가 살고 있는 지도 있고...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는 그렇게 환경이 좋은 동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같은 괜찮은 이웃들은 거의 찾아볼 없고, 레위기에서 말씀하고 있는불편한 이웃들만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294 이조

Then why he is telling us to do so?

While preparing for this sermon, I prayed as following "Lord, I cannot stand living near this kind of neighbour. Especially with kids, shouldn't I be living among nice neighbours?". Then God replied to me, " Yes, I also want you to live as you wish. However, if you want to live among nice neighbours you have to die early... since up in heaven all neighbours are nice..."

 

 

Even though there are over 6.3 billion people living on earth, think of it as only 100 people living in a small town. 52 of them are female and 48 are men. 30 of them are children, 70 are adults, 7 elders, 70 colour and 30 white. 61 of them are asians, 13 are africans, 13 north americans, 12 europeans, and the rest are from the South Pacific. In addition, 33 are christians, 19 muslim, 13 hindus and 6 buddhists.

 

 

20 of them are undernourished, and one person is on the verge of starvation. However, 15 of them are obese. Also 6 of them possess 59% of wealth and they are all Americans. 74 have 39% and 20 of them only have the 2%. While 75 people are able to provide themselves food and shelters, the other 25 are not. 17 of them can't even drink clean water. From the town, only one person graduated from university and two people have computers. But 14 of them can't read. If you don't have to be afraid of arrest, torture or death and is able to express your belief, and faith out loud, you are luckier than the 48 who can't. If you don't have to be afraid of raid, slaughter, raid and abduction, you are luckier than the 20 who are.

 

         

This is the content from a book called, "Supposing The Earth To Be A Village of 100". From reading this book, we can broadly see what our whole village looks like. In other words, this village we are living in does not have a very good environment. Instead, it is full of the "bad neighbours" we've been talking about. 

 

5.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나는 정말 좋은 이웃일까? 차도 있고 집도 있고, 대학도 나오고, 컴퓨터도 있어서 100 중에 1 있을까 말까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이웃일까?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좋은 이웃일까?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좋은 이웃입니까? 아니면 나쁜 이웃입니까?

 But a question suddenly came up in my mind. Am I a good neighbour? Since I have a car, a house, came out of university with a degree, and I am able to use a computer, statistically this makes me one out of a hundred people who are able to do such things; but am I a good neighbour? Also, am I a good neighbour in the eyes of the Lord? How about you? Are you a good neighbour of God? Or a bad neighbour?

하나님은 번째 사람, 아담과 하와가 좋은 이웃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돌보고 다스릴 있도록 맡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눈에 보이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선악과에 손을 대는 순간부터 도둑질하고, 속이고, 서로 거짓말 하는 이웃이 되었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중상모략하는 이웃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불편한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100 중에 1명밖에 없는 넉넉하고 부유하고, 점잖고, 공부 많이 사람이라도...우리의 본질은 이와같다는 것입니다.

God wanted Adam and Eve, the first creations, to be a good neighbour. That was why God left the world at the hands of Adam and Eve to look after and to reign over. However, Adam and Eve could not overcome their desire for discrete objects; thus, laying their hands on the fruit of the tree of knowledge and making them neighbours who ‘steal, defraud, lie,’ placing responsibilities on others, and spreading slander among people. Thus, when God looks at us, he sees us as ‘uncomfortable neighbours.’ Even if we make one of the hundred people who have wealth, who are polite, and have knowledge from studying… We are built upon such foundations.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렇게 불편한 이웃인 우리를 향해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스스로 하신 말씀을 지키셨습니까? 다시 한번 17절을 보면, 너는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Do not hate your brother in your heart. Rebuke your neighbor frankly so you will not share in his guilt)라고 말씀하셨고 , 18절에서는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Do not seek revenge or bear a grudge against one of your people, bu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 am the LORD)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말씀대로 하셨습니까?

 But how did God react? Even though we are uncomfortable neighbours, what did God do for us? Did God take His words? If we reread verse 17 it records: “Do not hate your brother in your heart. Rebuke your neighbor frankly so you will not share in his guilt,” and in verse 18, “Do not seek revenge or bear a grudge against one of your people, bu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 am the LORD.” Did God really do as he said?

 

하나님은 이렇게 불편한 이웃들을 위해 어떻게 하셨습니까? 로마서 5 6절을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You see, at just the right time, when we were still powerless, Christ died for the ungodly)라고 말씀하고 있고, 로마서 5 8절에서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 10절에서도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For if, when we were God's enemies, we were reconciled to him through the death of his Son, how much more, having been reconciled, shall we be saved through his life)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여전히불편한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을 , 연약하고, 죄인 되었을 , 심지어 원수가 되었지만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것입니다.

What did God do for such uncomfortable neighbours? Romans 5:6 records, “You see, at just the right time, when we were still powerless, Christ died for the ungodly,” and in Romans 5:8 it says,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Also in Romans 5:10 records, “For if, when we were God's enemies, we were reconciled to him through the death of his Son, how much more, having been reconciled, shall we be saved through his life.” In other words, ‘even though we live as uncomfortable neighbours of God, powerless, sinners, and His enemies,’ we were able to reconcile with God through Jesus Christ.

 

6.

가수 조용필 씨의 매니저가 조용필 씨에 대해 글에 이런 내용이 있는데, 4 발매로 바쁜 활동 중에 전화가 왔어. 깡촌에 요양 병원 원장이었는데, 14 지체장애 여자애가 용필이 4집에 있는 비련을 듣더니 입원 8 만에 처음 감정을 보이더라는 거야. 눈물을 흘리더라는 거야. 여자애 보호자쪽에서 돈은 원하는 만큼 줄테니 용필이가 직접 불러줄수 없냐고 와서 얼굴이라도 보게 없냐고 부탁을 하더래. 당시에 용필이가 카바레에서 한곡 부르면... 지금 돈으로 3, 4천쯤 받았거든.. 용필이 한테 이야기를 했더니 피우던 담배를 바로 끄더니 병원으로 출발 하자는거야. 그날 행사가 4개였는데, 취소하고 위약금 물어주고 시골 병원으로 갔어. 병원 사람들 놀라자빠지지. 용필이가 여자애부터 찾어. 여자애가 아무 표정도 없이 멍하니 있더라고. 용필이가 여자애 잡고 비련을 부르는데.. 여자애가.. 여자애가 펑펑 울더라고... 여자애 부모들도 울고.. 용필이가 여자애 안아주고, 사인 CD 주고, 차에 타는데, 여자애 엄마가 물어. 어디로 보내면 되냐고, 얼마냐고.. 용필이가 그때 한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따님 눈물이 평생 벌었던, 앞으로 벌게 돈보다 비쌉니다

 Singer Yong-Pil Jo's manager once wrote about Yong-Pil Jo: During a busy time when Jo was releasing his fourth album, a phone call came from the director of a hospital located in KkangChon. He told them about a handicapped girl there who, after listening to Jo's title track. showed emotions for the first time in 8 years. The girl's guardians told Jo that they would pay him any amount of money he wanted if he would come down and sing the song for her, or even if he would show his face just once. Right away, Jo threw away the cigarette he was smoking and said we should start making our way to the hospital. That day he already had 4 other plans in schedule, but decided to cancel all of them, paying all cancellation fees. When we arrived at the hospital. all the people there were in shock. Jo held the handicapped girl's hands and started to sing his title track. Then, the girl started to cry, her parents started to cry as well. Jo hugged the girl and gave her a signed CD. As soon as we were about to leave, the girl's mother asked where she could send the money and how much they wanted. I still remember Jo's reply to her, "Your daughter's tears are priceless compared to the money I had made up until now, as well as the money I will have made in the future."

<제노비즈의 경우>(Genovese Case) 말이 있는데, 뉴욕 퀸즈에서 1964년에 키티 제노비즈가 살해되는 사건에서 비롯된 말인데, 여자가 공격을 받고 살해되는 장면을 38개의 얼굴이 창문에서 바라보고 있었지만 1명도 경찰을 부르거나 나가서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38명은 한결같이다른 사람이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다 대답했다고 합니다.

 The Genovese Case is a phrase started by a murder incident that occurred in Queens, New York in 1964, of a woman named Kitty Genovese. This woman was attacked and murdered while not even one of the 38 people watching through their windows called the police. When asked why they did not help, all of them replied, "I thought someone else would be helping."

이웃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크게 두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가까이에 인접하여 사는 . 또는 그곳에 사는 사람] 나타내고, 다른 하나는 [가까이 위치해 있어 경계가 서로 접하여 있는 모습]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둘다가까이에 인접하여 살거나 접하여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이웃은 이와같은 사전적인 정의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까이 있기 때문에 저절로 이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되어 주는 사람 이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When we search up the word "neighbor" in the Korean dictionary, two meanings come up. One is "a person who lives near another;" the other is "a person located close to another." What these two meanings have in common is that they refer to close contact. However, the Bible's definition of a neighbor is not one that automatically becomes a neighbor, but "one who will become a neighbor for another." 

읽지는 않았지만,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오는데, 3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율법학자에게, ‘ 생각에는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Which of these three do you think was a neighbor to the man who fell into the hands of robbers)라고 질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가 강도 만난 사람과 가장 가까이 사는 사람이냐고 묻지 않으시고,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의 이웃이 되어 주셨던 것처럼...

In Luke 10:36 Jesus asks, "Which of these three do you think was a neighbor to the man who fell into the hands of robbers?" He did not ask who lived closest to him, but rather who became a neighbor for this man, just as when Jesus himself became our neighbor when we were still sinners and enemies to Him.

처음에 함께 동영상이 다시 생각납니다. 가운데 보이는 사람의 얼굴은 웃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의 얼굴은 찡그린 얼굴입니다. 사람은 지금 행복할까요?

I recall the video that we watched earlier. While the man in the center is smiling, those around him frown. Is this man really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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