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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샘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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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0, 2011

2011.11.21 13:32

소풍 조회 수:3073

【2011년 11월 20일(주일)】VKC 성령강림절 후 23rd 주일

【본문】마태복음 25:31~46

【제목】물 한 그릇

1.

오늘은 2011 교회력이 끝나는 주일입니다. 한해 동안 주로 마태복음에 나오는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해왔는데, 오늘이 마지막 주일입니다.­ During the past year, we have mainly focused on the Words from the Book of Matthew and have contemplated Jesus’ life. Today will be the last week.

사실 마지막’,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왠지 마음이 숙연해 지는데, 그런데 우리가 잊고 살아서 그렇지, 모든 만물에는 처음이 있으면 반드시 끝과 마지막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전도서 3 1절부터 8절까지를 보면,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때가 있나니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When we hear the word “last,” or “the end,” we become very solemn and silent. But all things that have a beginning will have an end. So let us read Ecclesiastes 3:1 to 8.  “There is a time for everything, and a season for every activity under heaven: a time to be born and a time to die, a time to plant and a time to uproot, a time to kill and a time to heal, a time to tear down and a time to build, a time to weep and a time to laugh, a time to mourn and a time to dance, a time to scatter stones and a time to gather them, a time to embrace and a time to refrain, a time to search and a time to give up, a time to keep and a time to throw away, a time to tear and a time to mend, a time to be silent and a time to speak,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hate, a time for war and a time for peace” (Ecclesiastes 3:1-8)

그런데 2011 교회력을 마치면서, 지난 한해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문제는 어떤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볼 것이냐 하는 것인데...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기준에 비추어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Let us decide on a standard as to how we will look back our past year. I hope that through today’s Word, we have a chance to think about how we have lived the past year and how we should live from now on.

2.

먼저 말씀을 묵상하면서, 만약 말씀을 염소들이 듣는다면 상당히 기분이 나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왜냐하면 32절에, 모든 민족을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같이 하여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냥 구분만 하는 것이 아니라, 34절을 보면,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는  아버지께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말씀하고, 반대로 왼편에 있던 염소들에게는 41절에서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First, when I was meditating on the Word, I thought, ‘if a goat had heard today’s Word, it would have been very offended.’ The 32nd verse says that the Son of Man who comes in his glory will separate the people one from another “as a shepherd separates the sheep from the goats.” He is not just making a classification, however. He tells the sheep on his right, ‘Come, you who are blessed by my Father, take your inheritance, the kingdom prepared for you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But he tells the goats on the left, ‘Depart from me, you who are cursed, into the eternal fire prepared for the devil and his angels.’

말씀 이후로, 기독교인들에게 양은 축복의 상징이 되었고, 반면에 염소는 악과 저주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본문과 관련된 설교를 보면 대부분 어떻게 되어 있냐면, 양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양을 오른편에 두시고 축복을 하신 이유는, 양의 특성이 순종적이고 겸손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털을 깎을 때도 반항하지 않고, 도살장에서도 묵묵히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양이 얼마나 더럽고, 게으르고, 무감각하고, 근시안이라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고...양을 찬양하는 일색의 설교를 많이 합니다. 순종하는 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After this, many Christians now consider sheep to be a symbol of a blessing, while they think the goats are associated with evil and the cursed.  If you look at the related contents of the verse, they are full of praises to the sheep. The reason that God put the sheep on His right, and blessed them, was because of their positive attributes – their obedience and humbleness. When a sheep gets a haircut, it does not rebel and it also quietly accepts death at the slaughterhouse. In fact, even though sheep are very dirty, lazy, insensitive, and short-sighted in reality, there are many preaching that praises the sheep. The sheep had received God’s blessing because it was obedient.

반면에 염소는 어떻습니까? 성질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소는 주인이 끌고 가려면 절대로 따라오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앞장서서 주인을 끌고 가는 고집불통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소는 불순종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그러니 심판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과 염소는 각각 순종과 불순종의 상징으로 보고, 염소처럼 불순종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애매한 염소들만 불쌍하게 되는데...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염소를 그렇게 창조하셨는데, 더러운 성질 때문에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억울하다고 생각 있기 때문입니다. How about the goats? They have a bad personality. The goats are never obedient when they are dragged by their owners.  They are so stubborn that they are the ones dragging their owners. That is why they represent disobedience. But if you look at it that way, it’s kind of unfair for the goats…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과 염소가 순종과 불순종의 상징이기 때문에 이렇게 것이 아닙니다. 성격이 좋다, 나쁘다의 문제는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서 중요한 것은 32절에 있는 구분이라는 단어인데, 양이기 때문에, 염소이기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 때가 되면 구분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양과 염소를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보면 구분되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데, 흔히 말하는 것처럼 양과 염소라는 특성에서 이유를 찾을 없다는 것입니다.  Anyway, this did not happen because sheep and goats represent obedience and disobedience, respectively. It is also not because one has a good personality and the other doesn’t. The important word here is “separate.” They are used in this context only to emphasize that word. Of course, there is a reason why they are distinguished, but you will not be able to find that reason from the personalities that we normally think of when we think of sheep and goats.

어쨌든, 실제로 당시의 풍습을 보면, 양과 염소는 낮에 풀을 뜯을 때는 무리에 상관없이 서로 섞여서 지냅니다. 그런데 일교차가 심한 팔레스틴 기후에서는 잠잘 때가 되면 목자들이 양과 염소를 철저하게 구별했는데, 왜냐하면 양들은 추위에 강하지만, 염소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염소는 따뜻한 곳에서 잠을 자도록 하기 위해서 따로 구분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같은 풍습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가 되면 한데 섞여 있던 사람들이 분명하게 구분(구별)된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양과 염소의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Generally during the afternoon, sheep and goats gather together and eat grass. Due to the severe climate temperatures in Palestine at night, the shepherds had to strictly and thoroughly distinguish between goats and sheep. This was because the sheep are resistant to cold but goats are vulnerable to the cold. That is why the goats were distinguished from the sheep so that they can sleep in a warm place. Jesus knew this custom. That is why when he was talking to the people about how they will be judged and separated apart from others, he talked about the goats and the sheep.

그런데 이미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이것이 마태복음 23장부터 25장까지 나오는 종말론의 일관된 주제입니다. 종말에는 반드시 구분, 구별이 있다는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이 구별되고,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가 구별되고, 심지어 24 40, 41절을 보면,  때에 사람이 밭에 있으매 사람은 데려가고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사람은 데려가고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밭에 있었는데, 똑같이 맷돌질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은 데려가고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종말에 일어나는 가장 특징적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The consistent theme of Chapter 23 to 24 of the Book of Matthew is the Apocalypse. In the end, there is separation. A good and faithful servant is separated from wicked and lazy servants. Five wise women are separated from five foolish women. Even Matthew 24:40-41 says that “Two men will be in the field; one wi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Two women will be grinding with a hand mill; one wi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This is a typical characteristic to an end.

3.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구분되는 기준이 뭐냐는 것인데...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양의 성격 때문에, 염소의 성격이 불순종적이기 때문에...그렇기 때문에 구분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을 정확히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본문을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오른편에 있는 사람이나, 왼편에 있는 사람이나 자신이 그렇게 구분된 이유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왜 자신이 상을 받는지, 아니면 벌을 받게 되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Then, what is the factor that distinguishes between the two? As I have said before, it is not only because of the differences in the natures of the sheep and the goat… Looking at today’s scripture closely, we see that the people don’t know why they were placed on the right or the left. They do not know why some are getting rewarded why some are being punished.

 

한번 볼까요? 37절을 보면,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라고 질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들이 왜 의인으로,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상을 주신다니까 좋기는 한데...자기들이 예수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한 적이 없는데...혹시 착각하신 것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Verse 37 says, “Then the righteous will answer him, ‘Lord, when did we see you hungry and feed you, or thirsty and give you something to drink?’” By asking, they are showing that they do not know why they were classified as the ‘righteous’ as they have never fed or given him something to drink.

 

, 44절을 보면, 왼편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다시 말해서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시고 목마르신 것을 보면서도 공양하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모습을 보았다면 가만히 있었겠냐? 정말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Furthermore, when we look at verse 44 it says, “They also will answer, ‘Lord, when did we see you hungry or thirsty or a stranger or needing clothes or sick in prison, and did not help you?’” They are saying that they have been unfairly characterized as ‘unrighteous’ as they would have not stood by had they seen Jesus hungry or thirsty or in need of something.

 

결국 두 종류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왜 상을 받는지, 왜 벌을 받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항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이런 경우를 당한다면 얼마나 황당할까요?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엄청난 항의사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The two groups of people have been categorized without knowing the rationale and thus are asking Jesus what is going on. How would we feel if we were to be put into the ‘unrighteous’ group without knowing the reason? Wouldn’t we also be complaining?

 

4.

 

그러면 도대체 이렇게 양과 염소를 구분하신 이유와 기준이 무엇이냐? 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로 고심을 했는데, 유명한 Jeremias라는 신학자는 이 본문을 이방인들에 대한 이야기... 즉 이방인들이 어떤 기준으로 심판을 받게 되는지에 대한 말씀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이방인들을 심판하실 때, 그 사람이 선행을 베풀었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았는지에 따라서, 즉 굶주린 자를 먹이고, 목마른 자를 마시게 하고, 나그네를 영접하고 헐벗은 자를 입히고, 병든 자를 돌보고, 옥에 갇힌 자를 찾아보았는지....여기에 나오는 여섯 가지 선행을 중심으로 구분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럴듯 한가요? Then what is the standard with which Jesus had divided between the sheep and the goat? One scholar, Jeremias, looked at this scripture and concluded that when Jesus was judging the Gentiles he looked at whether they had been kind in terms of feeding the hungry and giving a drink to the thirsty and serving those who are ill or poor or imprisoned. Do you agree with his point of view?

 

그런데 저는 이와같은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데, 만약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이도 선행을 통해, 공로를 통해 구원받게 된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의 선행과 노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 선생님께서 로마서 4 14절에서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는 말씀처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또 다른 율법주의로 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I personally disagree as this would suggest that a person who doesn’t believe in God but does good deeds will be salvaged. And if this were true, what would be the point of the cross and Jesus’ blood? In Romans chapter 4 verse 14 Paul says, “For if those who live by law are heirs, faith has no value and the promise is worthless.” Thus in a way, Jeremias’ interpretation may be a variation of this commandment-centred thinking.

 

그래서 이 말씀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하게 믿는 사람들을 향해 주신 말씀으로 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마태복음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을 향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성장과 성숙을 위해 주신 교과서와 같은 책입니다. Thus, we need to think that the scripture is not for non-believers but for the believers. Matthews, especially, was written for those who have already become Christians and was intended to help them grow and mature as his sons and daughters.

 

그런데 마태복음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철저하게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고백이 아니라 신앙 실천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저와 여러분 같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정말 주님의 오른편에 서기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The main point of Matthews is that the faith of someone who does not act on it is dead and that our actions are more important than our confessions. It suggests that we need to put our faith into practice by showing love to our neighbours and thus is asking us whether we are apt to stand on the right side of him.

 

5.

 

사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물 한 그릇’인데, 37절에,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라는 말씀과 42절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에서 따온 것인데... 그런데 여기에만 이 말씀이 있는게 아니라, 마태복음 10 42절을 보면,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Today’s sermon is titled “Something to Drink/A Cup of Water”. It is repeated in verse 37(“Then the righteous will answer him, 'Lord, when did we see you hungry and feed you, or thirsty and give you something to drink?”) and verse 42(“For I was hungry and you gave me nothing to eat, I was thirsty and you gave me nothing to drink.”) This term can also be found in Matthew 10:42, “And if anyone gives even a cup of cold water to one of these little ones because he is my disciple, I tell you the truth, he will certainly not lose his reward.”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데, 그래서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물 한 그릇’의 의미가 남다른데.... 예전에도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2007년에 아프리카를 다녀왔습니다. 그때 함께 동행했던 선교사님이 펜실베니아에 본부를 둔 ‘물 한 그릇 선교회’에서 사역하시는 권종승 선교사님이라는 분입니다. ‘물 한 그릇 선교회’는 생명의 물인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육신의 물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비전으로 세워진 선교단체인데... 마침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우물 파는 기계를 보내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아프리카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도 거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서 케냐와 탄자니아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진을 한번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very time I read these verses the words “something to drink” jumps out at me because I have a special attachment with these verses. I have mentioned before that in 2007 I had the opportunity to go on a mission trip to Africa. I was accompanying missionary Kwon Jong-Seoun who served “A Cup of Water International” which is a mission group based in Pennsylvania.  This organization believes that in order to share the water of life that is the gospel, we need to first give people water for their physical bodies. When I had the opportunity to join them in one of their journeys they were in the midst of a project which was aimed at sending a machine to dig for wells. During this journey, I was able to visit Kenya and Tanzania and I would like to share some pictures I took there.

 

<ppt #1>아프리카는 말 그대로 야생동물의 천국입니다. 문을 열어놓고 가면 원숭이들이 들어와서 골탕을 먹이기도 하고, 세렝게티 공원에는 홍학떼가 가득합니다. Africa is a haven for wildlife. If you leave the doors open, the monkeys will make a mess. And the Serengeti Park is filled with flamingos.

<ppt #2>두번째 사진을 보면 얼룩말도 볼 수 있고, 코뿔소와 수많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습니다. There you can also see zebras, rhinoceroses and many other wild animals.

<ppt #3>하지만 아프리카는 그렇게 풍요로운 곳이 아닙니다. 아프리카는 지형적으로 거대한 암석층으로 되어 있어서 물이 보관되지 않고 다 빠져나가는 지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점차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But, Africa is not a land of plenty. Topographically, the continent is made up of layers of rock which prevents water from being stored. This is why desertification has been progressing throughout the continent.

<ppt #4>제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흔하게 보았던 나무가 이와같은 가시나무인데, 그리스도의 가시면류관처럼, 아프리카를 찌르는 가시나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I saw thorny trees such as these very often while I was in Africa. Like Jesus’ crown of thorns, these trees seemed to be piercing this poor land relentlessly.

<ppt #5, 6>다음 사진을 보시면, 케냐와 탄자니아에 가장 널리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마사이족인데...이 사람들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안에 들어가면 이렇게 되어 있구요...This picture shows the Maasai people that live in Kenya and Tanzania. I had the opportunity to visit one of their homes. The interior looks like this.

<ppt #7, 8>다음 사진을 보시면,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건기가 되면 가장 중요한 일이 물을 길어오는 일인데... 물통을 메고 아침에 출발해서 물을 길어오면 하루가 다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나마 물이 있으면 다행인데..이 사람들이 어렵게 찾은 물은 이런 물입니다. The Next picture shows the most important ritual of these people during drought season. In the morning they leave to get water, but it takes the whole day to accomplish this task – but, they can’t find water every time. And even when they do get some water, the water they labour to bring to their homes look like this.

<ppt #9, 10>그런데 사람만 물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짐승들도 목이 마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 물을 함께 마십니다. It’s not just people that need water. Animals also need water. So, they drink it together.

<ppt #11, 12>그때 저희들이 가서 했던 일은 이런 통을 만드는 것이었는데...전기가 없는 곳에서 아무리 좋은 정수기가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Bio-sand filter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원리는 간단합니다. 통속에 굵은 자갈을 맨 위에 넣고 그 다음에 중간 자갈, 가는 자갈 그리고 맨 마지막에 모래를 넣어서 물이 흘러가면서 자연적으로 정화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When we were there we made containers like these because even the best water filters are useless when there is no electricity. This container is used for something called the bio-sand filter. You put layers of large, medium, small pebbles and sand in the container and when the water runs through them, it gets filtered naturally.

<ppt #13>그런데 이게 그래도 효과가 좋습니다. 왼쪽에 있는 게 그냥 고여있는 물이고, 오른쪽에 있는게 필터를 통해 나온 물입니다. 이 정도의 물만 먹어도 아프리카의 질병 중에서 80%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It seems quite archaic, but it is nonetheless effective. The left is water that was sitting still, and the right side shows the water which has been through this filter. If they drink this water, they can prevent 80% of the diseases that is rampant in Africa.

<ppt #14>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Schools at which the children study are the same.

<ppt #15>이게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물통입니다. 저희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 통에 있는 물을 마시는 아이들을 보면서...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This is the water container the children carry around. I was speechless upon seeing these kids drink this water without hesitation.

<ppt #16>그래서 아이들 학교에 Bio-sand filter를 설치하고 왔습니다. We made a bio-sand filter at their school.

<ppt #17>이 일을 하고 계신 선교사님은 70이 넘으신 의사 선생님이셨습니다. 병원을 은퇴하고 남은 여생을 아프리카에서 봉사하시겠다고 헌신하셨는데, 아무리 치료를 해도 이런 물을 마시는 상태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주 사역으로 하고 계셨습니다. The missionary who was serving this project was a doctor who was over 70 years old. He had made a commitment when he retired to live the rest of his life in Africa serving these people. But, he realized that no medical treatment would be affective if the people were drinking this water. So, he has made providing clean water his main mission.

<ppt #18, 19>아프리카에서 물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물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People have tried many things to find water in Africa. But, every time they failed.

<ppt #20, 21, 22>그래서 어떤 독지가의 도움으로 탄자니아에 우물 파는 기계를 보내고, 설치를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끝내 거기서도 지하수를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신학교에 그 기계를 전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물을 찾기를 기도하고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Through the generosity of a benefactor, we sent a machine for well digging; but, we couldn’t find any water. In the end, we left the machine at a seminary and prayed that we would find water.

<ppt #23>마지막 사진인데요...저는 아직도 이 장면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이 본문으로 주어졌을 때...저는 참 감당하기 어려운 심정이었습니다.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This is the last picture – It is also the most unforgettable image I saw. When I received today’s scriptures for the service today, I was deeply challenged: “Truly I tell you, whatever you did not do for one of the least of these, you did not do for me.’”

 

6.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41절에 보면,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Let’s think about this. In verse 41 Jesus says, “Then he will say to those on his left, 'Depart from me, you who are cursed, into the eternal fire prepared for the devil and his angels.”

 

도대체 이 사람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렇게 끔찍한 저주를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마귀와 함께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마귀’는 어떤 존재냐면 διαβολος중상자, 비방자, 갈라지게 하는 자’인데, 하나님과 사람을 갈라지게 해서 멸망에 이르게 하는 존재들... 이런 마귀들과 함께 멸망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흉악한 사람들이었을까요? What had these people done to deserve such a curse? The devil is διαβολος, meaning slanderer, vilifier, and the one who divides. The one who divides people from God and leads them into eternal condemnation. These people are told that they will fall with this devil. Were they such horrific people?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심판의 대상자로 나오는 사람들이 크게 잘못한 내용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잘못이나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단지 45절에 보면,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하였다는 말만 나옵니다. But, when we look at today’s scripture carefully, they haven’t done such grave atrocious things. They are not people who seem to deserve such scorn from others. Except, as we see in verse 45, they hadn’t done for one of the least of these.

 

다시 말해서 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악을 행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문제가 뭡니까? 크게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 그냥 땅에 묻어두고, 수건에 감추어 두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30절에서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요? 그가 악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In other words, they hadn’t done something bad, but they hadn’t actively done something good. I asked last week, what was the problem of the servant that received one talent? He didn’t do anything wrong. He just buried the talent and hid it from others. But, in verse 30 it says, “And throw that worthless servant outside, into the darkness, where there will be weeping and gnashing of teeth.” Why? It wasn’t because he had done evil, but because he didn’t do something he must have done.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심각한 죄를 저질렀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12절을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I tell you the truth, I don't know you...내가 너를 모른다고 말씀하신다면...  The parable of the 10 virgins is the same. What were the 5 virgins guilty of? It doesn’t say that they did something wrong. But, they didn’t prepare the oil. Look at verse 12 where it says, “But he replied, 'I tell you the truth, I don't know you.” Isn’t it pitiful? Imagine God saying to you that He doesn’t know you.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뭐 그렇게 잘못한 일이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아프리카의 사람들에게 크게 잘못한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냥 우리는 믿음생활 잘하면서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만하면 오른편에 있을만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에 비추어서 생각해 볼 때...우리는 어느 자리에 있는 사람들입니까? What about us? Have we done such horrible things in our lives? What have we done that is so awful towards Africans? We have lived well in faith. Maybe it is easy for us to think that we are on God’s right side. But, God is telling us something different today. My brothers and sisters! In the context of today’s scripture, where are we?

 

7.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2011 교회력 마지막 주일, 한해가 저물어 가는 계절입니다. 마지막 달력을 앞에 두고 생각해 봅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주님 앞에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면 오른편과 왼편... 어느 한쪽에 있을 밖에 없는데...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I will now conclude my sermon. As the last week in the church calendar of 2011, it is the season in which the year is soon ending. Let us try to put forward our last calendar and think of our life. Everyone has a time when they stand in front of the Lord. But at that time, having the choice to either stand on the left or on the right, where would we stand?

간절히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그날에 이렇게 말할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위해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요. 제가 언제 주님께 먹을 것을 드리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주님 저는 정말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여기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에게 그릇을 나누지 않았니? 그것이 나에게 것이란다...I hope that when that day comes, we are able to talk with God like this. “Father, I have not done anything for you; when have I ever offered you something to eat, something to drink? I confess I have failed to offer you anything.” I hope that when that time comes God would tell us: “My dear son and daughter, didn’t you share a bowl of water with your fellow brother/sister, did you? That is what you have done for me.”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남은 인생의 시간을 살아야 할까요? 간절히 바라기는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을 입혀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My dear church members, how should we live the rest of our lives? I sincerely hope that we are able to see Lord’s hunger and thirst so that we will offer Him a food and drink, to see the poor wanderer of Lord so that we will welcome Him, and to see the ragged Lord so that we will clothe Him. (translated by Mika Choi, Jiye Chun, Soyeon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