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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샘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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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1 2013(신현철 목사)

2013.07.23 10:52

소풍 조회 수:666

2013 7 21(주일)VKC 성령강림절 (9)주일 예배

【본문】창세기 18:1~16

【제목】손님 (A Guest)

1.

  
마침 오늘 설교 후에 청년들이 던칸에서 사역했던 선교활동을 보고하는 시간이 있는데, 예전에 한국에 있을 , 벌써 10년도 넘었는데... 청년들과 함께 몽골로 단기선교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Since today the youths are presenting about the missionary to Duncan, I remember going with some youths on a short missionary trip to Mongolia 10 years ago.

          
보통 단기 선교를 가기 위해서는 6개월 정도를 준비합니다. 특히 선교지의 문화와 풍습에 대한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는데, 몽골 선교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Usually a short missionary trip requires about 6 months of preparation, especially study on the culture and customs of the mission field. This was the same case as when we went to Mongolia.
  
권의 책을 청년들에게 나눠주고 공부를 다음에 시험을 봤습니다. 하나는 [징기스칸은 살아있다] 책이고, 다른 하나는 [아내를 빌려주는 나라]라는 책이었는데, 저자(신현덕) 직접 몽골에 살면서 경험하고 체험한 내용을 썼기 때문에 몽골을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We studied two books among our youths and then took an exam. One book was called "Genghis Khan is Alive," the other "A Country that Lends Wives." The author (Hyun Duk Shin) went to Mongolia himself and lived gathering information and experience, which became a big help in allowing us to understand Mongolia.
   
특히 [아내를 빌려주는 나라]라는 책은 제목 때문인지 몰라도 다들 열심히 읽었습니다. 시험 성적도 아주 좋았고... 여러분도 책의 내용이 궁금하실텐데, 결론을 말씀드리면 지금은 그런 풍습이 없어졌으니까 그런걸 기대하고 몽골에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와같은 풍습이 생겨났느냐 하는 것인데.... 

 

In particular, everyone worked hard to read "A Country that Lends Wives," possibly because the title piqued our interest. The conclusion was that these customs disappeared in Mongolia now, but what is important was how these customs blossomed at first.

 

인구가 희박한 몽골에서는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었습니다. 하지만 초원에서 가까운 친족이 아닌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근친끼리의 결혼을 통해 자식을 낳게 되면 유전적으로 결함이 생기기 쉽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그네를 만나게 되면 자식을 낳을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몽골은 모계 사회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누구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풍습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In such a sparsely population country like Mongolia, the best virtue was to give birth to many children. But in the big plains it was hard to meet someone not closely related. People there knew that children who are born of closely related parents had a high chance of birth defect. And so if there were a traveler that came, people thought it was a good opportunity. Furthermore, because Mongolia had a matriarchal society, it wasn't so big a deal to know who the father was. This was why such customs came to be.
  
어쨌든 몽골 사람들은 손님을 극진히 접대합니다. 저도 몽골에서게르라고 하는 몽골 사람들의 유목 텐트에서 잠을 자면서 지낸 적이 있는데, 먼저아이락이라고 하는 젖을 발효시켜서 만든 음료수를 줍니다. 우리 나라 막걸리처럼 약간 시큼한 냄새가 나고 많이 먹으면 취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마실만 합니다. 살코기만 있는 빨간 고기는 거의 먹지 않고 말려서 여름에 비상식량으로 먹고, 대신 귀한 손님일수록 비계가 많은 고기를 줍니다. 왜냐하면 추운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는 지방이 많은 비계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덕분에 저도 귀한 손님 대접으로 물컹 물컹한 비계 덩어리를 먹었는데...

 

Mongolians host their guests very dearly. I once slept in their nomadic tent and someone first gives me a drink of fermented horse milk, a slightly sour and alcoholic taste like Makguli. Also, Mongolians do not eat red meat since they save it as emergency food for the summer. Instead, they give the fattiest meat for the most important guests. This is because in the winter it is best to eat food with lots of fat. As a result, they gave me lots of fatty food...

그런데 이렇게 극진하게 손님 접대를 하냐면, 몽골의 대평원지대에서 유목 생활을 하다보면, 동안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나그네를 만났는데, 만약 내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그네는 다른 도움을 받을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목민들이 서로 서로 보험을 드는 것처럼, 다른 나그네를 돌보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Why the Mongolians devote so much to treating guests is that in the great plains of Mongolia it is difficult with a nomadic life to come across people for many months. But if somehow you were to come across a traveler, what would become of him/her were you not to help? That traveler would not be able to receive help elsewhere. Just like these nomads insure each other in help, they find it absolute to help other travelers as well.

이와같은 유목민들의 풍습과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는 모습이 매우 닮아 있는데... 그래서 그때 몽골 선교를 준비하면서 공부하고, 몽골에서 직접 경험했던 유목민의 삶이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중요한 힌트가 되었습니다

 

In this way, we can see how the customs of Mongolian nomads and Abraham's treatment of travelers in today's passage are similar. The studies I did to prepare for the sermon and the experience I gained at Mongolia about the life of nomads will become important hints in today's message.

2.

우선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은 창세기 23장에서 사라가 죽고 매장지를 족속으로부터 사면서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나그네 생활, 유목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이 뜨거웠다는 것은 하루 중에 가장 뜨거운 정오 때를 의미하고, 그래서 아브라함은 장막 옆에 그늘에 앉아서 더위를 피하면서 졸고 있었을 것입니다.

The LORD appeared to Abraham near the great trees of Mamre while he was sitting at the entrance to his tent in the heat of the day. (Genesis 18: 1)

Abraham gets to own the land in Genesis Chapter 23 after Sara dies and he buys the cave of Machpelah from the Hittites for a family burial site. So, until then, he is living a nomadic life. “The heat of the day” suggests that it is the hottest time of the day and Abraham therefore may have been sitting at the entrance to avoid the heat.

그런데 2절을 보면,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있는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몽골 사람들의 시력이 보통 5.0 정도라고 하는데, 이렇게 눈이 좋은 이유는 유목 생활을 , 멀리서 다가오는 짐승이 어떤 짐승인지 분별하지 못하면 자기가 키우는 양이나 염소를 재빨리 피하게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Abraham looked up and saw three men standing nearby… (Genesis 18:2)

I heard that many Mongolian people have perfect eye sights. The reason for their amazing ability to see far away is due to their nomadic life style. In order to make sure their sheep and goats are safe, they need to quickly distinguish whatever is coming towards them from far away is harmful or not.

생각에는 아브라함도 시력이 엄청 좋았으리라 생각되는데, 멀리서 다가오는 짐승인지 사람인지 구별할 있었고, 사람이 명이라는 것도 금방 알아 차릴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I think that Abraham had a good eye sight as well. He knew whatever was coming towards him was human beings. He also knew there were three coming towards him.

그런데 물론 아브라함이 시력은 좋았을지 몰라도, 나그네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만큼 영적인 안목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13절부터 이야기의 당사자 중에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데...암튼 이때까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But despite his good eye sight, he probably would not have known the identity of those three strangers as he did not have spiritual discernment to know who they were. Anyway, in verse 13, he finally finds out that one of the strangers is the Lord. Until verse 13, he has no idea.

어쨌든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끝까지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했습니다. 그래서 2절을 보면,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맞이했습니다. 달려 나갔다는 것은 손님이 왔으니 어쩔 없이 맞이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시 말해서 자발적으로 나그네를 영접했다는 의미이고, 몸을 땅에 굽혔다는 것은 귀한 방문자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고대 근동 지역의 일반적인 풍습입니다.

However, Abraham greets the three strangers politely and respectfully from the start.

… he hurried from the entrance of his tent to meet them and bowed low to the ground (Genesis 18:2)

The verse shows that he hurried to greet them and that shows that he did not do this because he had to. It shows that he took initiative to meet them. His act of bowing low to the ground is a general custom in the ancient Near East to greet a precious visitor.

그리고 3절에 보면,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라고 말하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나그네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그네들이 아브라함에게 머물러 주는 것이 호의를 베푸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상대방에게 마음 놓고 쉬라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If I have found favor in your eyes, my lord, do not pass your servant by. (Genesis 18:3)

Abraham is saying that he is not the one doing a favour to the strangers and that it is the strangers who are doing him a favour.  Here, Abraham is telling the visitors to completely have a peace of mind.

4절에 보면,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라고 말하고 있는데, 먼지가 많은 사막 지역에서 샌달같은 신발을 신고 다니기 때문에, 손님에게 가장 먼저 발을 씻을 물을 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Let a little water be brought, and then you may all wash your feet and rest under this tree. (Genesis 18:4)

People at that time used to wear sandals and travelled to many deserts that were full of sand dust. It was also a custom to first wash the feet of the visitors.

6절을 보면, 아내인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 했는데, 여기서 고운 가루 스아 결코 작은 양이 아닌데, 1 스아가 보통 12리터 정도 된다고 하니까, 스아는 사람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한 양이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7절을 보면,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tender calf and gave it to a servant)아서 종에게 요리하게 하였고, 8,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았습니다.

In verse 6, Abraham tells Sarah to “get three seahs of fine flour and knead it and bake some bread.”

1 seah equals about 12 litres. So three seahs of flour means he prepared a meal that was more than enough for three people.

In verse 7 and 8, Abraham “selected a tender calf and gave it to a servant who hurried to prepare it” and even brought “some curds and milk and the calf that had been prepared, and set these before them.”

그런데 이렇게 음식을 차려 놓으면서도 5절을 보면,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식으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고, 차린 없지만 많이 드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Even then, he says “Let me get you something to eat.” (Genesis 18:5)

This is similar to a Korean custom to fill the visitor’s table with various types of dishes and still say, “I don’t have much but please enjoy what I have before you and help yourself.”

여러분은 이와같은 말씀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앞으로 손님을 대접하려면 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So what do you think of when you read today’s passage? Do you think you should do as much as Abraham does when greeting a visitor? 

3.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본문에서 말하려고 하는 핵심적인 주제가 아브라함이 이렇게 나그네를 대접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까?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나그네를 대접해야 하면,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주신 것처럼 축복을 주신다는 의미일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죽하면 히브리서 13 1, 2절을 보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Keep on loving each other as brothers. Do not forget to entertain strangers, for by so doing some people have entertained angels without knowing it.)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 마태복음 25 37~40절을 보면,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에게 것이 내게 것이니라’(Lord, when did we see you hungry and feed you, or thirsty and give you something to drink? When did we see you a stranger and invite you in, or needing clothes and clothe you? When did we see you sick or in prison and go to visit you? The King will reply, I tell you the truth, whatever you did for one of the least of these brothers of mine, you did for me.)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가장 약한 형제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는 것이 예수님께 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나그네를 정성껏 대접하고, 약한 형제를 섬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했기 때문에 여기에 감동받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했고,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손님을 접대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있다...정말 이런 말씀이냐는 것입니다.

While I was musing on these verses, I came across a thought, “If we treat strangers like Abraham did, would we get blessed by God?”



It is important to serve strangers; even in the Epistle to the Hebrews 13:1-2, it is said “Keep on loving each other as brothers. Do not forget to entertain strangers, for by so doing some people have entertained angels without knowing it.”



Moreover in Matthew 25:37-40 it is said, “Lord, when did we see you hungry and feed you, or thirsty and give you something to drink? When did we see you a stranger and invite you in, or needing clothes and clothe you? When did we see you sick or in prison and go to visit you? The King will reply, I tell you the truth, whatever you did for one of the least of these brothers of mine, you did for me,” which means that taking care of the weakest sibling is the same as serving the Lord.



From these verses, we could sense that treating strangers well and taking care of weak siblings is very important. But the question is would we really get blessed if we treat well strangers like Abraham did. 289 (이조)

4.

앞에서 이미 말씀드렸지만, 아브라함이 손님을 대접하는 모습을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아주 특별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달려 나가서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고, 나그네를 향해 주님이라고 말하고, 물을 가져와서 발을 씻게 하고, 떡을 만들고 송아지를 잡고...

 I have already mentioned before, but how Abraham has welcomed the guests is not something one would do today. Run towards the guests to greet them, bowing his head to the ground, calling travelers lord, bringing water for the guests to wash their feet, make bread, and kill a calf…

그런데 사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유독 괜찮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만 이렇게 손님을 대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나그네를 돌보는 것이 거의 불문율처럼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앞에서 말씀드린 몽골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대접이 소홀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몽골사람들은 아내를 빌려주기까지 했으니까....

 This is a typical reaction at this time and not something only Abraham just because he was a good person. During this period, hospitalizing travellers was a common law for those living near the East. If we rethink about the Mongolians I have mentioned before, this welcoming may be rather careless. This is because the Mongolians even ‘lent’ their wife…

물론 다음에 나오는 19장에서 소돔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브라함이 잘해서라기 보다도, 소돔 사람들이 못했기 때문이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과 달리 특별히 나그네를 대접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본문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But if we were to compare with the people of Sodom, from verse 19, Abraham has hospitalized these travellers well. It is because the people of Sodom were evil which made it look like Abraham has done good. Therefore, these verses were not dictated to show how well Abraham has welcomed his guests.

오히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다는 것이 많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12절을 보면,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So Sarah laughed to herself as she thought, "After I am worn out and my master is old, will I now have this pleasure)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손님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사라가 어떤 반응을 보였냐면, 속으로 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이에 무슨 즐거움을 보겠냐는 식으로...

 If we contemplate the verses, the key is found in how Abraham and Sarah did not accept God’s message. Thus in verse 12 records, “So Sarah laughed to herself as she thought, "After I am worn out and my master is old, will I now have this pleasure.“ When Sarah heard the conversation between the guests and her husband, she ‘laughed to herself;’ because she thought ‘what pleasure may I find at this old age’…

그런데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앞에 17 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Abraham fell facedown; he laughed and said to himself, "Will a son be born to a man a hundred years old? Will Sarah bear a child at the age of ninety?)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아브라함이 웃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But this is not the first time such an affair has occurred. In Genesis 17: 17 it records, “Abraham fell facedown; he laughed and said to himself, "Will a son be born to a man a hundred years old? Will Sarah bear a child at the age of ninety?” it records that Abraham has laughed.

다시 말해서 17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때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는지 없지만, 아마 아주 영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저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18장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이번에는 아주 구체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는데, 여전히 믿지 못하고 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Thus, in chapter 17 God has appeared in front of Abraham to make a promise. The form which God has chosen to appear is unknown; however, the form was probably very holy. But Abraham only laughed. And in chapter 18, God has reappeared; this time in the form of a human. But they did not believe; thus, making them laugh.

결국, 아브라함과 사라는 손님은 대접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방문을 맞이하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Therefore, Abraham and Sarah might have welcomed their guests well, but has failed to greet God.

 

5.

 말씀을 묵상하면서, 계속 질문이 맴돌았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핵심적인 주제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가셨을까?

 

9절에 보면, 손님들이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묻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알려주지도 않았던 아내의 이름을 알고 물어 봅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면,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가 노인 부부에게 아직 자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덕담을 했다고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14절에서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Is anything too hard for the LORD? I will return to you at the appointed time next year and Sarah will have a son) 말씀하실 때야 비로소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을 찾아오신 분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과 사라가 특별한 일을 하고, 뛰어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장 평범하게 살아갈 , 이때까지만 해도 믿음도 별로 없었을 .... 일상 가운데 손님으로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연 중에 하나님을 위해 뭔가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별한 헌신, 특별한 봉사, 특별한 예배....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만날 있는 때는, 그렇게 특별한 일을 했을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손님처럼 하나님을 마주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뭔가 특별한 대접을 해드리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의 대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해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Is anything too hard for the LORD? I will return to you at the appointed time next year and Sarah will have a son)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오해하지 것은,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 주시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분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능하지 못한 일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는 인간과 같은 불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어디까지 그게 가능하냐면... 심지어 하나님 자신의 전능함을 제한하여 인간이 되시는 것까지, 나아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버려 두시는 것조차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가능성의 무한함이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무한한 가능성을 신뢰하지 못하고 비웃으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17장에서 아브라함이 웃었고, 18장에서 사라가 웃었습니다. 그런데 웃음은 모두 비웃음, 헛웃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방문하시는 이유는, 맛있는 송아지 요리를 대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의 고단한 삶을 살아가면서 참된 웃음을 잃어버린 저와 여러분에게 참된 웃음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서...이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심방하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방을 받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정말로 자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름을웃음이라는 뜻의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방문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게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는 능치 못한 일이 없구나... 인간의 한계가 하나님의 한계가 아니구나... 그러니 하나님의 가능성을 신뢰할 밖에 없고.. 이제부터 진짜로 웃을 있는 세상이 것입니다.

Meditating upon the Word, I found myself asking a couple of questions: “Then what is the main idea in today’s passage? Why did God approach Abraham?” 

In verse 9, the guests ask, “Where is your wife Sarah?” The guests know Sarah’s name without being told. Also, in verse 10, it states, “I will return to you at the appointed time next year and Sarah will have a son.” However, at this time, Abraham merely thought that a wanderer had told the old couple positive remarks only because the wanderer knew that they did not have any children.

It was only in verse 14 when it stated “is anything too hard for the LORD? I will return to you at the appointed time next year and Sarah will have a son” that they realized that something was out of the ordinary. They had realized later that their visitor was not a normal person. 

In other words, God did not visit Abraham and Sarah because they performed special deeds or had exceptional faith. In fact, God visited them when they were living the most ordinary lifestyle and did not have strong faiths.

 

We often think that we have to unconsciously serve God with a special deed. Special devotion, special service, special worship…. However, the time when we can truly meet God is not when we perform those special deeds. Rather, we encounter God like a fleeting passerby in our daily lives. Thus, we do not have to think about ways to prepare something special for God.

The one thing that God wants the most is for us to know exactly who God is. So today in the main passage God says to Abraham, “Is anything too hard for the LORD? I will return to you at the appointed time next year and Sarah will have a son.”

However, we should not misinterpret this message. God is not the one who simply grants every one of our wishes like a magic wand. That nothing is too hard for the Lord means that He is above the human race with His unending power. God’s abilities extend to Him limiting his omnipotence to turn Himself into a human, and then leaving Jesus Christ to die on the cross. These are just two examples of God’s infinite power.

Unfortunately, the problem is that we do not believe in God’s omnipotence and continue on with our lives. As mentioned before, Abraham laughed in chapter 17, and Sarah laughed in chapter 18. Both Abraham and Sarah laugh half-heartedly at God’s seemingly impossible claims. In other words, the reason that God visits us is not to receive a prosperous offering made of calf, but to restore true laughter and happiness to people like us who have lost our laughter from living exhausting lives in this world: this was God’s objective in visiting Abraham. 

Eventually what happened to Abraham and Sarah after God’s visit? Sarah conceived a child. So they named the child “Isaac,” a name which means “laughter.” Abraham and Sarah came to know who God truly was through His visit: “Nothing is impossible for the Lord, and what limits men does not limit God.” Thus they had no choice but to accept and believe in God’s infinite capabilities and they would live in a world in which they can truly laugh with joy.

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특별할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으로 찾아 오십니다. 그럴 어떻게 하나님을 맞이하면 좋을까요? 바쁘고, 분주하겠지요?

 

읽지는 않았지만, 오늘 성서일과를 보면 누가복음 10 38~42절까지 말씀에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을 찾아 오셨습니다. 여기서도 무엇을 대접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를 방문하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 동안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에게도 손님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땅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분을 기쁘시게 있을까요?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대접하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야겠다고.... 우리의 헛웃음, 비웃음을 참된 웃음으로 바꿔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바라기는 이번 주간 동안 하나님의 심방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게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참된 웃음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Dear my fellows, Lord does not come on special occasions, but comes during our normal daily lives. How would he treat him then?



Although haven’t read, if we look at today’s biblical lectionary the Gospel of Luke chapter 10 from verse 38 to 42 tells the story of Maria and Martha; Jesus came to visit Maria and Martha. He told what they serve him is the important matter. This is because it is important that Maria and Martha know who Jesus is.



The last whole week while preparing for the sermon, I was also waiting for a visitor, Jesus, to come.

“However, how can I please him?” while contemplating the words, I finally realized. It is not so much about serving and treating, but receiving God’s gift...The gift of God’s kindness and grace that turn our sneer and smirk to a true sm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