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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9 2012 (영상)

2012.01.30 08:27

自由靈魂 조회 수:1280

 

"권위 있는 새 교훈"(마가복음(Mark) 1:21~28)

 

권위있는 (New Teaching with Authority)(신현철 목사)

 

1.

지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는 장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향해 17,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말씀하셨습니다.

 

(2) Through the words last week, we saw that Jesus had called Peter, Andrew, James and John. Towards these fishermen he said,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Mark 1:17).

 

원래는 낚는다 단어가 없어서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어쨌든,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람들의 어부’(fishers of men) 부르셨습니다. 흉흉한 바다에서 물고기를 끌어올리듯이, 예수의 어부들은 세상에서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사람들이기에, 사탄적 바다, 카오스 세상 안에서 사람들을 끌어 올려서 살리는 어부들로 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Jesus had called them to become ‘fishers of men.’ Just as the fishermen catch fish in the rough seas, the disciples were to take people out of the satanic sea, the chaotic world.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를 지켜 보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사람들의 어부 되어서 세상이라는 암흑의 바다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3) In today’s scripture we see Jesus performing a demonstration of how this is done. I’d like for us to pay close attention to how Jesus does it as we too, are to become ‘fishers of men’ and rescue those who are drowning in the dark seas of this world.

 

2.

가장 먼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나는지가 중요한데, 어부가 물고기를 잡으려면 포인트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어부 마찬가지입니다. 건져내야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21, 가버나움에 들어가’(They went to Capernaum)셨습니다.

 

(4) The first thing we need to look at is where Jesus went and who he met. Just as the fishermen need to know where the fish are before throwing the net, the same applies to the ‘fishers of men.’ We see that in verse 21 Jesus “went to Capernaum.”

 

자칫 잘못하면 가버나움이라는 장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가버나움에 사람이 많았었나 보다...역시 교회는 사람이 많은 , 예를 들면 목이 좋은 아파트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버나움이라는 장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번역하면 가버나움 안으로’(εἰς Καφαρναούμ)인데, 여기서 안으로’(εἰς)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23절에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in their synagogue who was possessed by an evil spirit)다는 말씀과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5) Upon reading this line we may misinterpret it and place the importance on ‘Capernaum;’ however, this is not the case. When ‘going into Capernaum’ is written as ‘εἰς Καφαρναούμ’ and it is this into ‘εἰς’ that is important to us. Why? Because it is related to verse 23 where it says, “in their synagogue who was possessed by an evil spirit.”

 

무슨 얘기냐면, 회당에 있었던 귀신들린 사람 귀신이 사람 안으로 들어간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가버나움 안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들어가서 사람을 사로잡은 것처럼, 예수님도 가버나움 안으로, 사람들 안으로 들어 가셨다는 것입니다.

 

(6) In other words, just as the evil spirits had gone into a person to possess them, Jesus went into Capernaum, into those people of Capernaum.

 

그런데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신 곳은 가버나움만이 아니었습니다. 21 뒷부분을 보면,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도 가버나움 안으로 똑같이 회당 안으로’(εἰς) 되어 있습니다.

 

However, Jesus not only went into Capernaum but went also into the Synagogues. The ‘into’ here is also written as ‘εἰς.’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안에 누가 있습니까? 23절에 보면,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Just then a man in their synagogue who was possessed by an evil spirit)었습니다. 여기서귀신이라고 하니까 머리 풀고 나오는 귀신만 생각하기 쉬운데, 정확하게 말하면 입니다. 그래서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말은 영이 더럽혀졌다, 잘못된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의미입니다. 결국 사람은 몸은 회당 안에 있지만, 회당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귀신 안에, 더러운 , 잘못된 생각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7) Now, who were in the synagogues? Verse 23 tells us, “Just then a man in their synagogue who was possessed by an evil spirit.” Evil spirit tends to make us think of phantoms or ghosts like Casper but to be possessed here means that their souls were soiled and that only wrong thoughts have filled their heads. Thus, although their bodies are in the synagogue, they are not fully present. Instead, they are inside the evil spirits, the filthy soul, and the wrong school of thoughts.

 

묘하죠? 가버나움 안에 회당이 있고, 회당 안에 사람이 있는데, 사람은 귀신, 악한 , 더러운 생각이 가득 있었고, 예수님은 다시 회당 안으로 들어가서 지금 사람을 만나고 있으니...

 

(8) Strange, right? Inside Capernaum there is a synagogue and inside the synagogue there are people, who are full of the evil spirits and yet, Jesus has gone into the Synagogue to meet these people.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는데 정신이 뻔쩍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람을 낚는 사람이라는 생각만 했는데, 갑자기 내가 어쩌면 회당 안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있지만, 더러운 생각과 영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When I was thinking about the words today, I suddenly realized that I may be one of those possessed people. I’ve always only thought of myself as one of the ‘fishers of men;’ however, I could be spiritually possessed and only physically present here, in the church.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배당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예배당 안에 있다고 해서 저절로 하나님 안에 있습니까? 우리 무엇이 있습니까? 혹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있지는 않습니까?

 

9) I want you to think about this. We are at church. But are we really in God just because we are here? What is really in us? Are there other things that are occupying our thoughts and mind?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안으로예수님이 들어오셨습니다. 비록 내가 악한 생각과 영에 사로잡혀 있지만,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당안에서예수님과 귀신안에있는 사람이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However, despite the fact that the people were possessed by the evil spirits, Jesus went into the synagogue. Likewise, even though we are surrounded by evil thoughts and spirits, Jesus comes into us; allowing for Jesus to meet the person inside the spirit.

 

바라기는 만남을 통해 귀신들린 사람의 생애가 자유케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지배하는 것들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0) I hope that through today’s sermon, just as these people became free from the spirits, we too, will become free from all the things that occupy our minds.

 

3.

어쨌든 가버나움안으로’, 회당안으로들어가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21 말씀대로 가르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너무나 아쉬웠는데, 예수님께서무엇을가르치셨는지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려주셨으면 우리 후배들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암튼, 그냥 가르치셨다는 말씀만 나오고,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나오는데, 22, ‘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The people were amazed at his teaching, because he taught them as one who had authority, not as the teachers of the law.)  27절에서도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The people were all so amazed that they asked each other, "What is this? A new teaching--and with authority! He even gives orders to evil spirits and they obey him)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설교하고 가르치셨으니까 오죽하겠습니까?

 

11) Jesus, as soon as he had gone into the synagogue, “began to teach” (1:21). Although the bible doesn’t tell us what he taught, an unfortunate omission in my mind, it shows us the response of the people, “The people were amazed at his teaching, because he taught them as one who had authority, not as the teachers of the law” (1:22). Furthermore, ‘The people were all so amazed that they asked each other, “What is this? A new teaching – and with authority! He even gives orders to evil spirits and they obey him”’ (1:27).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마가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22절에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라는 말씀 바로 다음에 어떤 사건이 나오냐면,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건이 끝나면 또다시 27절에서 권위 있는 교훈이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가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가르침 중간에 귀신을 축출한 사건을 말하면서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2) However, upon reflecting these lines I realized that Mark didn’t omit the teachings of Jesus but in fact, is telling us them in detail. After verse 22 we see Jesus chasing the evil spirits out of the people and afterwards in verse 27 it says, “A new teaching – and with authority!” In other words, by telling us that Jesus chased the evil spirits in midst of his sermon, Mark is telling us that this was Jesus’ teaching.

 

그러면 예수님의 설교,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이 사람들에게 놀라운 교훈이 되었는지, 사람들이 이것을 권위있는 교훈이라고 말하게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물론 귀신을 쫓아냈으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기적이면 기적이지, 권위있는 교훈이라고 말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13) Jesus chasing out the evil spirits… How is this a teaching? I understand why people were amazed would understand if the people had thought of this as a miracle. However, they are calling is an authoritative teaching. Why is this case?

 

4.

우선 예수님과 귀신들린 사람과의 만남을 생각해 보면,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What do you want with us, Jesus of Nazareth? Have you come to destroy us? I know who you are--the Holy One of God)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예수님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본 사람이 없었는데, 귀신이 처음으로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초로 신앙고백도 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누군줄 압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분입니다

 

(14) When Jesus first came to these people who were possessed, they said, “What do you want with us, Jesus of Nazareth? Have you come to destroy us? I know who you are – the Holy One of God” (1:24). Isn’t it amazing that the first person to ever recognize Jesus for who he is was a possessed person? And that the person who’s ever confessed his faith was also him? – “I know who you are – the Holy One of God.”

 

열왕기상 17 24절을 보면, 사렙다 과부가 엘리야에게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아노라’(Then the woman said to Elijah, "Now I know that you are a man of God and that the word of the LORD from your mouth is the truth)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렙다 과부가 엘리야를 향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말과 지금 귀신이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거룩한 이라고 말하는 것은 같은 표현입니다.

 

(15) When we look at Kings I chapter 17 verse 24, we see that the widow of Zarephath telling Elijah, “Now I know that you are a man of God and that the word of the LORD from your mouth is truth.” The ‘man of God’ here is the same as what was said to Jesus in Mark ‘the Holy One of God.”

 

이렇게 본다면, 귀신의 믿음과 통찰력은 대단합니다. (귀신같이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의 입에서 나온 고백을 기뻐하지도 않으셨고, 칭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25절에 보면,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사람에게서 나오라’(Be quiet! said Jesus sternly. Come out of him)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꾸짖다 단어 에피티마오’(ἐπιτιμάω) 부모가 자식을 타이르거나 나무랄 쓰는 단어가 아닙니다. 전혀 애정이 없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서 단어는 치명적인 공격과 저주에 사용됩니다. 다시 말해서 귀신은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거룩한 라고 말했는데, 예수님은 꾸짖 저주했다는 것입니다.

 

(16) It seems that both the observation skills and the faith of the evil spirit are amazing. However, instead of complimenting this person for confessing as such, he says, “Be quiet! said Jesus sternly. Come out of him” (1:25). ‘Sternly’ (ἐπιτιμάω, Epitimao) here, isn’t like when a parent scolds his child but is a word completely without love and thus is used throughout Mark when cursing or attacking. In other words, while the evil spirit called Jesus “The Holy One of God,” Jesus scolded and cursed it in response.

 

5.

이상하죠?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 그러셨을까? 너그럽게 받아줄 수도 있었을텐데... 저주를 퍼붓는 모습이 예수님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더군다나잠잠하고 사람에게서 나오라 말은 쉽게 말하면입닥치고 나오라 말인데, 귀신이 틀린 말을 것도 아닌데, 너무 심하게 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17) Isn’t it strange? Why did Jesus, who is kind and generous, act that way? Couldn’t he have listened and calmly let the man be? The way Jesus spoke seems quite out of his character. In fact, when it says “Be quiet!” and “Come out of him!” we can translate that today as saying shut up and come out! Perhaps such a reaction seems harsh as the man didn’t say anything particularly satanic or possessed.

이유를 알기 위해서 먼저 생각해 것은, 지금 예수님과 귀신은 맞서 싸우는 상황이고, 귀신이 했던 말은 예수님을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해서 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나는 당신이 누군줄 압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분입니다라는 말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치명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이 예수님에 대한 공격이 되는지,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18) To understand why Jesus reacted such a way, we need to remember that Jesus is fighting the evil spirits at this moment and what the evil spirit said through the man was not to recognize Jesus as Christ, but actually to attack his authority. In other words, “I know who you are – the Holy one with God” wasn’t a confession of faith.

이유를 알기 위해서 마가복음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묘하게도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감추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 1 34절에서예수께서 각종 병이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and Jesus healed many who had various diseases. He also drove out many demons, but he would not let the demons speak because they knew who he was)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44절에서도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See that you don't tell this to anyone. But go, show yourself to the priest and offer the sacrifices that Moses commanded for your cleansing, as a testimony to them)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9) So, why was this an attack on Jesus? Throughout Mark’s gospel, we can see Jesus hiding his identity. Look at Mark 1:34 (and Jesus healed many who had various diseases. He also drove out many demons, but he would not let the demons speak because they knew who he was)

Look also at 1:44 (See that you don't tell this to anyone. But go, show yourself to the priest and offer the sacrifices that Moses commanded for your cleansing, as a testimony to them)

 

3 11, 12절에서도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Whenever the evil spirits saw him, they fell down before him and cried out, "You are the Son of God." But he gave them strict orders not to tell who he was)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제자인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했을 때조차도, 8 29, 30, ‘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But what about you?" he asked. "Who do you say I am?" Peter answered, "You are the Christ." Jesus warned them not to tell anyone about him) 있습니다.

(20) This continues in 3:11-12 (Whenever the evil spirits saw him, they fell down before him and cried out, "You are the Son of God." But he gave them strict orders not to tell who he was.)

Even when his disciple Peter confesses his faith in Christ, Jesus asks in 8:29-30, “But what about you?" he asked. "Who do you say I am?" Peter answered, "You are the Christ." Jesus warned them not to tell anyone about him.”

9장에는 변화산 사건이 나오는데, 9 7~9절을 보면,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Then a cloud appeared and enveloped them, and a voice came from the cloud: "This is my Son, whom I love. Listen to him!" Suddenly, when they looked around, they no longer saw anyone with them except Jesus. As they were coming down the mountain, Jesus gave them orders not to tell anyone what they had seen until the Son of Man had risen from the dead)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가복음에서는 철저하게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 감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하면입을 닥치라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21) Even in chapter 9 when Mount of Transfiguration appears we can see that Jesus’ identity is closely guarded: (verses 7-9) Then a cloud appeared and enveloped them, and a voice came from the cloud: "This is my Son, whom I love. Listen to him!" Suddenly, when they looked around, they no longer saw anyone with them except Jesus. As they were coming down the mountain, Jesus gave them orders not to tell anyone what they had seen until the Son of Man had risen from the dead.

 

6.

이렇게 하셨을까요? 혹시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말을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의 정체를 밝히는 찬양을 하면 안되는 것이 아닐까요?

많은 학자들이 이것을메시야의 비밀이라고 말하는데, 마가복음 15 39절을 보면,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And when the centurion, who stood there in front of Jesus, heard his cry and saw how he died, he said, "Surely this man was the Son of God)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순간을 메시야의 비밀이 온전히 드러나는 순간으로 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정체를 비밀로 감추신 까닭은, 마지막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누구도 메시야에 대해 제대로 없기 때문에, 잘못된 메시야 고백을 하지 말도록 하기 위해서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22) Why did it have to be this way? Did Jesus dislike his identity being revealed? Should we then not sing songs that praise Jesus as Christ?

Many academics call this the ‘Messianic Secret’. In Mark 15:39 it says, “And when the centurion, who stood there in front of Jesus, heard his cry and saw how he died, he said, "Surely this man was the Son of God.”

(23) We see this point in Mark’s gospel as the moment when the secret is truly revealed. In other words, the reason why Jesus hid his identity was because it was only after the crucifixion that anyone could know the Messiah fully. He had to hide to stop people from confessing wrongfully without knowing the full truth.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는 순간에 예수님을 향해 메시야 고백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고백을 막으셨습니다. 진정한 고백은 자리가 아니라 십자가의 자리에서, 메시야의 비밀이 온전히 드러나는 그곳에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의 고백에 대해입닥치라 말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귀신은 의도적으로 십자가 없는 예수님을 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신의 말에 대해 강하게 꾸짖고 쫓아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27절에서권위있는 교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4) People often realized Jesus was the messiah after a miracle was performed. But, Jesus stopped them from this confession because a true profession of faith happens not in the place of a miracle, but before the cross where the messianic secret is completely revealed.

This is why Jesus told that man to be quiet. The evil spirit was trying to reveal Jesus on purpose. Thus, Christ had to speak sternly and drive the spirit out. This verse (27) is known as the “New Teaching with Authority”.

 

7.

우리는 보통기적을 일으킬 있는 능력 있으면, 혹은 카리스마틱한 능력이 있으면권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제가 자리에서 기적을 일으킨다면 얼마나 목사의 권위가 세워지겠습니까? 대단하겠죠?

그런데 오늘 본문을 생각해 보면, 권위는 그런게 아닙니다. 귀신을 쫓아냈기 때문에 권위있는 교훈이 아니라, 귀신의 말을 막은 것이 권위있는 교훈입니다. 귀신같은 말에 현혹되지 않고 메시야의 비밀이 십자가에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이 예수님의 권위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가르침대로 사셨고, 가르침대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위있는 가르침은 이와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으로 인해 더욱 강력한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25) We often think of authority belonging to someone with miraculous powers or charismatic influence. Think about it. If I performed a miracle here, wouldn’t my authority as a pastor become stronger?

But, when we look at today’s scripture, we learn that authority is not about such powers. A new teaching with authority didn’t stem from Jesus’ ability to drive out the evil spirit. Instead, it came from Jesus stopping the evil spirit’s words. (26) He wasn’t fooled by the evil and stayed true to his messianic secret which led to the cross.

He lived according to that teaching, and he died according to that teaching. Through Christ’s life and death, his teaching has authority and gains more power.

귀신은 어떤 존재입니까? 사람의 인생을 사로잡아서 포로로 만들고, 파괴시키고, 분열시키는 존재가 귀신입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삶에 들어와서 우리를 혼돈의 바다에 빠뜨리는 실체가 귀신입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사로잡힌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입으로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권위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나는 당신을 압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 이렇게 수없이 외치지만, 오히려 예수님은입을 다물라 말씀하십니다. 십자가 없는 메시야 고백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27) What are the evil spirits? It is whatever that takes control of one’s life and destroys it. It stops you from being free in the truth and brings confusion into our lives. Perhaps we are living such lives. So, we may profess our love of God with our lips, but still live without authority in our daily lives. We may shout, “I know who you are – the Holy one of God!” but, Jesus tells us to “Be quiet!” because faith without the cross is powerless.

서기관들의 말과 예수님의 말씀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기교의 차이가 아닙니다. 논리적인 전개의 차이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놀랐던 것은 말씀대로 살았던 예수님의 생애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사람들의 어부 되려면 권위있는 말씀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말이 권위있는 말씀이 되려면, 우리의 삶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십자가에 닿았듯이, 우리의 삶도 십자가에 닿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희생과 헌신 없이 던져지는 말은 그냥 말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권위있는 교훈 선포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귀신을 제압하고 자유케 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어부 되시기를 바랍니다.

(28) What was the difference between the teachings of the officials and Jesus? It wasn’t a difference of technique. It wasn’t a difference of logic. What surprised people was how Jesus lived the way he taught. This is the same for us. If we want to be fisherman of men, we need to have the new teaching with authority in our hearts. In order to do this, we also need to look back at our lives and check where our lives have brought us. (29) As Jesus’ life led him to the cross, our lives also must be led to the cross. Words without the sacrifice and devotion of the cross are just words.

Beloved brothers and sisters! I pray that we will be able to spread this new teaching with authority to fight evil and free people to become fisherman of men.